곡사(김곡, 김선 감독)의 <보이스>를 올 해의 영화로 주목하는 평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줄 평 역시도 혹평에 가까운 말들이 쏟아진다. 혹은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글이 너무 적다고 느낀다. 그러나 2021년이 다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이미 <보이스>를 올 해의 저평가된 영화로 꼽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수사 과정을 추적하는 그저 그런 액션 영화가 아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보이스>의 스토리가 성글다는 지적이 많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이 부분은 곡사의 '무능'이 아니라 '무심'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어떻게 추격할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가 대강 넘어가는 부분들은 조금의 시간만 더 들였으면 충분히 설득 가능한 부분들이다. 그럼에도 <보이스>는 때때로 장면들을 그냥 던져버리듯, 후다닥 스토리를 풀어내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 영화는 서사의 진행을 주요한 축으로 삼고 있지만, 때때로 무신경한 그 연출들을 보았을 때, 사실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보이스 피싱 수사에 대한 부분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
<보이스> 스틸컷
그런가 하면 영화가 꽤 신경 써서 그리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보이스 피싱 조직 그 자체이다.
먼저 조직의 브레인인 곽 프로(김무열)는 피싱 시나리오를 짜는, 말 그대로 '뇌'의 역할을 담당한다. 피해자를 인간적으로 대면하지 않고 흥미로운 게임처럼 취급하는 그는 기계 혹은 바이러스에 가까운 뇌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피싱 조직을 넘어 한국 사회를 침범하는 거대한 뇌이다.
대열을 맞춰 앉아서 피싱을 수행하는 조직원들은 무수한 '입'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은 수화기 너머 상대와 눈 맞추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오직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기계적인 입으로 작동한다.
이곳에는 인간들이 넘쳐나지만, 인간들의 집단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다. 오직 기능적인 신체, 기계적인 신체들의 집합이 있을 따름이다.
거대한 뇌와 수많은 입. 그 분절되고 기계적인 신체들이 모여 작동하는 괴물이 바로 보이스 피싱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서준(변요한)은 느낌이 좀 다르다.
먼저 이 영화의 액션이 통상적인 액션 영화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서준(변요한)은 분명 신체적인 능력도, 수사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그는 자주 맞는다. 장르적 관습에 의할 때 이런 공격쯤은 당연히 피하겠지 싶은 순간에도 그는 의외로 얻어맞는다. 또 맞을 때에는 멋있게 맞지 않고 정말 아프게, 온몸으로 묵직하게 맞는다. 이런 장면들은 그의 신체에 가해지는 타격 그 자체를 포착하고 있다. 분명 서준은 비상한 머리와 수사 능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겠지만, 스크린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 계획을 온몸으로 실행해 나가는 지극히 인간적인 그의 육신이다.
그는 건물의 전력을 차단할 때에도 배선을 쥐어뜯은 것처럼 끊어놓고, 막 공격을 받을 것 같은 위험한 순간에도 누가 때리든 말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에만 집중한다. 전설적인 실력에 비해 그의 방식은 어찌 보면 과격하고 무식하다. 이 순간 서준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험을 맨몸으로 헤쳐나간다. 그러니까 서준은 지극히 인간적이며 온전한 하나의 육신으로서 영화를 활보한다.
<보이스> 스틸컷
그러니까 <보이스>는 필요에 따라 절단된 '기계적'인 신체들, 오로지 뇌와 입 만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악령(보이스피싱 조직)을 하나의 뜨겁고 온전한 육체(서준)가 돌파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피싱 조직을 추적하는 스토리는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뼈대에 불과하다. <보이스>가 스크린을 통해 정말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기계화된 육체 사이를 활보하며 그것을 무력화하고 끝내 파괴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육체의 활동이다.
곡사의 필름이 늘 현대사회의 공포를 얼마간 품고 있다고 한다면 <보이스>에서 공포를 전하는 것은 목소리 그 자체이다. 이 목소리가 성가시고 악독한 것을 넘어 공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상대를 속이고 돈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라, 분명 인간에게서 나온 것임에도 인간성을 상실한 채로 바이러스처럼 사회를 떠돌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마구 늘어나고 있다.
인간에게서 나왔지만 인간성을 탈각한, 오로지 악의만을 담은 채로 떠도는 신체들. 그것이야말로 2021년 우리가 직면한 공포가 아니냐고 <보이스>는 말한다.
그리고 곡사는 그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을 소환해낸다. 뜨거운 피가 도는 온전한 육체를 불러내어, 오로지 그것만으로 공포의 실체를 스크린에 불러내고 파괴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때 영화는 스마트하고 일사불란한 범죄 조직을 그저 피 묻은 손으로 무식하게 쾅쾅 내리치듯 과격하고 대범하게 접근한다. 이 영화가 지적받는 투박함은 아마도 이런 스타일에서 일정 부분 연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곡사의 방식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이 기계화된 악한 신체들을 대면하는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믿는다. 성근 서사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신체의 액션만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보이스>의 연출은, 기이하게도 이런 결함 때문에 오히려 더 영화적이라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기계 안을 활보하며 이리저리 고장을 내는 듯한 서준의 모습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그가 얻어맞고 넘어지는 인간적인 모습도 이 영화의 오점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과연 곡사가 이런 점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는지를 물어본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영화를 두고 이야기는 성글고, 액션은 쾌감이 부족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보이스>의 진정한 가치가 서사나 액션에 있지 않고, 그 기저에 흐르는 '기계-신체를 돌파하는 인간'에 있다고 본다. 그런 점이 연출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서, 지금 영화의 이면에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더 많은 관객들이 느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이스>가 그저 그런 액션 영화라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지금 한국을 배회하는 공포를 포착해 그것을 대면하고 영화적인 방식으로 파괴를 시도한 작품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