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나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애틋해집니다. 그래도 아직 2021년! 해가 가기 전에 올려두려고 합니다. 제가 선정한 올해의 한국영화/외국영화 베스트, 과소/과대 평가된 영화입니다.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1위 : 인트로덕션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며 매 순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홍상수의 인물들, 그리고 그의 카메라. 인물과 카메라와 세계의 ‘거리’를 탐색하는 영화. 경이롭다.
2위 : 당신 얼굴 앞에서
현재를 살고자 하지만 미래와 과거 사이에 갇힌 듯한 상옥. 오로지 얼굴 앞을 응시하며 스스로의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 그녀의 기도와 발걸음, 시선 모두 아름답다.
3위 : 휴가
운동과 노동. 투쟁과 삶. 동지와 가족. 두 세계 사이를 배회하며 만들어 낸 작은 틈 사이, 쉽게 언어화 할 수 없는 떨림과 머뭇거림을 포착한다.
4위 : 보이스
조각난 채로 허공을 떠도는 목소리 사이를 돌파하는 하나의 뜨겁고 온전한 육체. 동시대의 공포를 섬세하게 잡아내고 그것의 영화적 파괴를 시도한 작품.
5위 : 종착역
이리저리 움직이고 이동하는 한 무리의 소녀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대화. 시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어느 빛나는 시절 속 아이들의 활동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한다.
<외국 영화 베스트>
1위 : 퍼스트 카우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문법. 모든 것을 뛰어넘는 생생한 이미지. 오랫동안 회자될 마스터피스.
2위 : 피닉스
도시의 공간과, 색채와, 동선. 멜로드라마의 서사 위에 새긴 역사 인식. 그 모든 것을 우아하게 직조하는 크리스티안 펫졸드.
3위 : 자마
식민지에서 홀로 서서히 붕괴하는 한 남자의 지각에 대한,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실험적 영화. 서서히 탈진시키는, 강렬하고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
4위 : 그린나이트
현실과 환상, 실사와 CG, 이야기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장중한 걸음. 360도 패닝숏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5위 : 스파이의 아내
전쟁의 시대, 두 남자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느 여인의 단정한 광기.
# 올해 과소평가된 영화
<보이스>
올해 한국 개봉 영화중에 동시대의 사회적 공포를 이토록 예리하게 잡아내고 영화적 파괴를 시도한 작품이 있었던가? 단순한 범죄 액션물 이상으로 평가되고, 더 많이 회자됐어야 했던 작품.
#올해 과대평가된 영화
<노매드랜드>
분명 훌륭한 작품이지만 미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소재, 로드무비 장르 특유의 매혹에 힘입어 평단에서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 클로이 자오만의 시선과 연출력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
* 올해는 특히 외국 영화 중에서 훌륭한 작품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순위에 미처 넣지 못한 <아네트>, <쁘띠 마망>, <파워 오브 도그> 등 다른 영화들도 눈에 밟히네요.
그래도 단 하나의 영화만 꼽으라면 저는 <퍼스트 카우>를 꼽겠습니다. 잔잔하지만 에너지가 충만한, 정말 놀라운 영화였어요. 몇 년 안에 보았던 영화 중에 이토록 강렬한 영화가 있었나 싶습니다. 다시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하지만 지금 한 편의 영화를 본다면 저는 <그린나이트>를 틀 것입니다. 영화가 가진 매혹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작품이랄까요. 스크린을 보는 순간이 행복했던 영화였어요.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기 힘이 든 것 같습니다. 이런 소중한 순간에 저의 공간을 찾아주신 모두들,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