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쾌감 대신 정당성에 집착하는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다 보고 나면 '엥?' 하는 의문을 남기는 영화다.
정확히는, 이 영화가 품는 욕망이 좀 요상하다고 느껴진다.
일단 이 영화는 처음부터 '평화'를 매우 명확하게 강조하며 시작한다.
엄마가 아들 콘래드에게 평화가 중요하다는 말을 남기고서, 그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이것은 영화가 너무도 쉽고 잔인하게 원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 뻔뻔스럽다. 잘 찍고 말고를 떠나, 원하는 의도가 매우 명확하며 그걸 손쉽게 성취하려는 빤히 의도가 보여서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영화는 '평화'라는 대의를 향해 다소 경직되게 달려간다. 그러니까 이번 킹스맨은 과거와 달리 익살맞은 액션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의를 강조하는 엄숙주의가 흐른다는 점에서 기존의 <킹스맨> 시리즈와 확연한 차별점을 보인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인 옥스포드 공작(랄프 파인즈)은 자신이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던 경험을 후회한다며 아들의 참전을 극구 반대한다. 하지만 아들 콘래드(해리스 딕킨슨)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싶다며 전쟁에 나가서 가장 위험한 임무에 자원한다.
물론 이 장면에 앞서 '국가를 위한 죽음은 영예롭다'는 취지의 가르침이 나오지만, 콘래드의 태도는 다소 투박해서 아쉽다. 그는 어째서 전쟁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도, 죽음에 대한 회의도 없이 20살이 되자마자 전쟁터로 향하는 것일까. 그저 명예로운 젊은이의 애국심과 용기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
그런데 콘래드가 처음 자원한 임무를 마치고 후회하는 순간, 영화는 그의 선택을 철없는 젊은이의 객기로 만들고 만다. 그는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고 되뇌인다. 그리고 얼마 뒤 전사한다.
사실 이런 결말은 다른 에이전트와 달리 뚜렷한 인상이 없는 대신 말간, 어린 청년의 이미지를 지닌 콘래드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전쟁터로 향할 때부터 이미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영화의 비장미를 위해 '전사해야 하므로' 전쟁터로 향한다.
이것은 공작이 무조건적인 평화주의를 버리고 다시 전쟁에 참전하는 계기가 된다. 그들은 '다시 이런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악의 소굴을 처단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모든 정치의 위에 있는, 심지어 (살인자들이라는) 도덕적 비판조차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에이전트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니까 영화는 처음부터 강조한 '평화주의'와 에이전트가 수행하는 '폭력' 사이를 매끈하게 매개하기 위해 '콘래드의 숭고한 죽음'이라는 서사를 끌고 왔던 것이다. 결국 킹스맨 시리즈가 이번 작품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폭력을 휘두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에이전트', 혹은 '평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먹을 날리는 에이전트'라는 이름으로 보인다.
이런 욕망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불필요하며, 거창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에이전트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과, 젊은 청년의 죽음과, 아버지의 방황을 장황하게 끌고 온다. 하지만 그 모두는 결국 '폭력과 살인은 나쁜 것이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괜찮다'는 정당성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수렴한다. 그러니까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취지는 기원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진짜 욕망은 앞으로 펼칠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킹스맨> 시리즈가 좋았던 이유는 그들이 윤리를 떠나 오로지 영화적 쾌감을 전달하며 질주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보여준 폭력이 정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니, 우리는 정당성 운운하는 현실의 골치 아픈 규율을 떠나, 오로지 영화에서만 가능한 쾌감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킹스맨>을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실패작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전보다 위트가 적거나 분위기가 어두워서가 아니다. 그것이 영화적 매혹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지점에서 억지스러운 윤리를 끌고 와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쁜 엄숙주의의 사례라고 볼 만하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싶은 욕망. 전쟁도, 살인도 부당하지만 에이전트의 활동만은 정당하다는 생각.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의 폭력만은 이견 없이 받아들여야 달라는 그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불필요하며 무거워서 거부감이 든다.
그러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를 보며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영화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그 욕망은 요상하다. 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벗어났으면 한다. 우리가 날리는 주먹은 '옳다'고 말하는 대신, '멋지다'고 뽐내던 이전의 재기발랄한 킹스맨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