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13. 2022
꽤 예전의 일이다.
그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만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만 관계는 이미 끊어졌으나, 우리 사이의 희미한 계곡에 여전히 어떤 감정이 남아 찰랑거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연락을 하리라는 것도.
역시나 연락이 왔다. 그 순간에는 아마 그도 매달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사이에 남아있는 희뿌연 감정의 잔해를 모두 태워버리기 위해, 말끔히 소진시키기 위해 연락한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마지막 연락이 만남을 위한 것인지 혹은 헤어짐을 위한 것인지는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연락을 받았을 때 차갑게 돌려보냈지만 사실은 한번 더 연락해주었다는 사실이 못내 기쁘고 반가웠다. 다행히도 그 맘을 숨기고 생각해둔 대로 행동했지만 한 번의 거절을 위해 많은 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것을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애정인지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만 보아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가 다시 만날 한 순간을 기대했다. 비록 그게 완전한 헤어짐을 위한 것이라도. 거절하기 위해 기다렸고 기다림 끝에 거절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어 기뻤다는 것만큼은 그가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다. 이제는 지나갔기에 말할 수 있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