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정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04. 2020

불행을 담는 그릇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불행을 담는 그릇이 하나씩 있는게 아닐까. 그 그릇의 크기는 각 달라서 누군가는 간장 종만한 불행만을, 누군가는 대접만한 불행을 고 살아가는게 아닐까 하 생각.


'내가 감당할 불행의 몫'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스스로 행복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누군가는 (불평을 하면서도) 스스로 불행한 걸 자연스럽다 느낀다. 또 신기하게도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을 해도, 전자는 점차 행복한 쪽으로, 후자는 점점 불행한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기가 편한 자리를 찾아가는 동물들처럼.


이걸 두고 '긍정의 힘'을 언급하는 건 너무 둔탁한 지적일 것이다. 그건 마치 의지를 갖고 부지런해져서 성공하라는 것처럼 공허한 조언이다. 매일 새로운 다짐을 해도 결국 일상의 관성에 무너지는 것처럼, 행복과 불행을 수용하는 태도도 관성적이다.


마음 속 불행의 그릇이 작은 사람은 다가오는 불행을 수용하지 않고 경쾌하게 쳐내지만, 불행의 그릇이 큰 사람은 다가오는 어둠에 수용적이고 순종적이다. 어떨 때는 이 불행의 그릇이 채워져야, 기어코 불행해져야 안심하기도 한다. 불행한 상태에 익숙한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안좋게 돌아가고,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해치려해도 그저 가만히 두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므로.


불행을 담는 그릇의 크기가 사람마다 왜 그리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감성은 여리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주도권없는 시절, 다른 사람에 의해 기분이 결정되는 시기, 한 마디로 어린 시절 떠안게 된 불행의 양에 따라 그릇의 크기도 결정되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그 후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그릇만큼의 행복과 불행을 감당하며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니 불행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불행의 그릇을 메우고 메워 작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크고 작은 불행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큰 행복에도 불안해 말고 자연스러워 지는 . 달리 말하면 자연스레 불행을 수용하려는 마음의 관성을 바꾸는 일이 먼저이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위해 작은 그릇을 사는 사람들처럼. 그래야 그릇의 크기에 맞는 행복과 불행도 찾아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렁한 마음에는 더 큰 울타리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