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09. 2022
직장인이 되면서 생긴 이상한 버릇 하나.
사람들과 미팅이나 식사를 하면, 이 자리를 좋은 분위기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뇌의 한켠을 지배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말을 하고 적절한 칭찬도 하면서. 자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게 나의 역량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긍정언어를 과장해서 내뱉는 버릇이 생겼다.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와 그건 정말 좋네요.
물론 진심으로 대단하고 좋다고 느낄 때도 많지만, 안 그럴 때에도 살짝 강박적으로 긍정적인 말들을 반복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이건 비즈니스를 할 때에는 미덕이자 센스가 맞다.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는 좋은 분위기에서 비즈니스도 잘 되고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런 면이 일상으로 살짝씩 넘어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의 정체성 중 중요한 부분이 평론가다보니, 이런 점이 더욱 의식이 된다. 평론가에게 평가의 인플레이션은 큰 문제니까.
알고 있다.
일할 때, 비평할 때, 친구와 만날 때를 잘 구분하면 되지. 그런데 내 자아들은 서로 피아구분을 잘 못하는지 자꾸만 뒤섞이고 조금씩 비슷해진다. 그래서 안그래도 될 때도 자꾸 저지랄을 함. 와아 정말정말 너무너무 좋네용!
그럼 평론가 자아가 한번씩 나와서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왜 자꾸 안하던 오버를 해. 그럴수록 니 말이 가치없어지는거 몰라? 그럴 때면 머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점점 가식적으로 변해가는건 아닌가 싶은 걱정도 든다. 이러다 언젠가 마음을 솔직히 말해야 할 때 아무말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냥 솔직담백하게 말하면 되는데, 이걸 고민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예전에는 언제나 투명하게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가끔 아연실색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연습을 하는 중이다.
느낀 만큼만, 생각한 만큼만 표현하는 그런 연습. 순도 높고 정갈한 말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또 듣는 사람도 그런 노력을 알아보고 귀한 말을 가치있게 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한 번 씩 못참고 오버도 하겠지만. 와.. 진짜너무좋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