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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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음모와 인간의 연대에 대한 영화
<골든슬럼버>는 일본 원작 소설에 기반한 작품으로 선량한 시민 건우(강동원)에게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과 음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동명의 일본 영화 역시 존재하고요. 최근 한국 영화계에 이처럼 '국가의 음모와 이에 맞서는 시민들의 연대'에 관한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한동안 이어질 것 같습니다.
청춘을 다루는 방식의 아쉬움
<골든슬럼버>는 이런 경향을 따르면서도 여기에 우정과 청춘의 코드를 더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가 스릴러(건우가 쫓기는 부분)와 드라마(건우와 친구들의 우정)를 접목시키는 방식은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고 거친 느낌을 줍니다. 스토리야 방대한 원작을 각색하고 압축하느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주인공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함께 싸우기로 다짐하는 일련의 흐름은 몇 번의 점핑으로 결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마도 영화가 청춘을 묘사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주로 회상 장면에서 보이는 청춘과 우정에 대한 묘사는 무엇보다도 올드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시간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에요. 이를테면 '햇살 아래에서 친구들과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카메라를 향해 웃는' (기억상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방식의 연출에서 느껴지는 올드함이랄까요. 그것은 누군가가 '지금 청춘을 회상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과거에 청춘을 회상하던 방식'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서 상투적으로 그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를 위한 여성 캐릭터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와 관련하여 한 가지 재밌는 점이 보이는데요, 그 대상은 주인공 선영(한효주)이 아니라 도팀장(이항나)입니다. 조직 안에서 주로 모니터를 보며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인물이죠.
도팀장을 보면 남성이 대부분인 조직 안에서 그 하얀 얼굴과 더불어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이 단연 부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 보다 보면 도팀장은 다른 인물들과 별다른 접점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주로 업무에 대한 지시를 일방적으로 내릴 뿐, 은퇴한 조직원 민씨(김의성)와도 부딪히지 않고 심지어 황국장 (유재명)이 조직원들을 때리며 분노를 쏟아낼 때도 난감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도팀장을 당장 남성 캐릭터로 전환시키더라도 이 영화에는 어떠한 영향도 없어 보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이 도팀장이 여성 캐릭터로 존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도팀장은 이 조직에 여성조직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개성이 아닌 성별로써 존재하는 것이죠.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이제 한국 영화에도 pc에 대한 고민이 두루 엿보인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반대를 말하자면, 여전히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명백한 한계가 보입니다. 이 영화가 남성조직 내의 도팀장을 어떻게 다룰지 난감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이것은 마치 과거 헐리웃이 인종의 pc를 의식하기 시작하던 시절, 백인 영화에 어딘가 어색한 흑인 조연 한 둘을 기용하던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현재의 시대 감각에 적응해야 할 것
소설 원작, 또는 동명의 일본 영화와 비교할 때 <골든슬럼버>는 국가 조직의 음습하고 완강한 폭력성을 그리는데 좀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설 개봉 영화라는 특수, 그리고 액션 영화로서의 성격과 맞물려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런면에서 비교적 소박한 감성이 느껴지는 일본 영화와 비교하여도 강점을 보이죠.
반면 여기에 영화의 또 다른 축인 청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잘 붙지 못하고 어딘가 따로 놀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추억에 대한 언급 한 마디면 주인공을 열렬히 조력할 정도로 사건 해결 과정도 조약 한 편이죠. 그런데 사실 이런 점들은 향후 노동석 감독이 다른 작품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점에 해당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그의 이번 영화 전반에서 느껴지는 시대에 약간 뒤떨어진 듯 한 감각입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청춘에 대한 상투적 표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강하게 엿보이고요. 설 연휴에 한국 영화들이 약진해 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랬는데 딱히 그런 작품들이 잘 안 보여서 안타깝네요. 노동석의 다음 작품을 좀 더 기대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