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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03. 2022

올해는 손석구의 해인가?




대중은 늘 라이징스타를 찾는다. 

지난 해의 라이징스타는 누가 뭐래도 구교환. <D.P.>, <킹덤> 등에서 연기 눈도장을 박고,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챙겨가는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손석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손 배우는 <멜로가 체질>(2019)에서는 성깔머리 있고 제멋대로지만, 속이 깊고 따스한 '상수'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했다. <D.P.>(2021)에서는 냉철하고 야심이 큰 임지섭 대위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연애 빠진 로맨스>(2021)에서는 연애가 싫다 툴툴거리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남자의 얼굴을 정감가게 보여주는데 성공했고, 최근에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외롭고 쓸쓸하며 위험해 보이지만 어딘가 진한 인간미가 풍기는 '구씨' 캐릭터를 맡아 홈런을 날리고 있다. 곧 개봉할 <범죄도시2>에서도 주연을 맡았다고 하니 꽤 인상깊은 필모그래피다.


그러고보니 떠오르는 스타가 늘 그렇듯, 알찬 작품을 잘 알아보고 그 작품에서 자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면서 꾸준히 안타를 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다보면 적당한 때를 만났을 때 한 방 제대로 터지면서 라이징 스타에 오르고는 한다. 그 다음에는 스캔들, 인성논란 등의 이슈들이 한번 훑고 지나가고 (손석구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뜻. 물론 과거가 클린해서 이 과정을 겪지 않는 스타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잘 살아남으면 스타의 반열에 공고하게 남게 된다.


손석구는 아마도 남녀 관객의 반응이 갈리는 스타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우성, 장동건 같이 선 굵은 스타들은 성별 불문하고 '미남'이라는 칭호를 얻는다면, 손석구 같이 이목구비의 선이 얇지만 남성미가 있고 연기력이 좋은 스타일(한 마디로 오래 보아야 더 크게 매력을 느낀다는 뜻)은 여성 관객에게 특히 큰 호응을 얻고는 한다. 그런 점에서는 조승우, 구교환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손석구에 대해 쏠리는 반응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손석구 배우의 매력은 '마초적인 초연함'에 있는 것 같다.  

거칠고 마초적이면서 세상에 관심없다는 듯 제멋대로 살아가는, 하지만 제 여자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런 투박함. 손석구 특유의 낮은 음성과 조곤조곤한 말투가 이런 장점을 더 부각시킨다.


특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와 <멜로가 체질>의 상수는 손 배우의 매력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다. 인생을 놓아버린 듯 막 살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으르렁 거리지만, 의외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정성스럽게 들어주는 구씨는 그 자체로 꽤 매력적인 캐릭터다.  

분명 위험해 보이는데 순간순간 인간적인 따스함이 툭 불거져나은다. 여성 관객의 흥미와 모성애를 동시에 자극하는 절묘한 캐릭터인데, 손석구는 이걸 또 너무 찰떡같이 잘 소화한다. '거칠고 위험하지만 내 여자에게만 따듯한 남성 캐릭터'는 언제나 여성 관객에게 통한다.


<멜로가 체질>의 상수도 오래 등장하지 않지만 꽤 흥미로운 남자다. 성질이 불같아서 일할 때 욕도 하지만 또 제 잘못이나 패배는 깨끗하게 인정한다. 가진 재산을 전부 보육원에 기부할 정도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화끈하게 실천하고, 꼬소한 결명자차를 즐겨마실 정도로 자기 취향에 솔직해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 손석구는 마치 '일시정지' 된 것 처럼 느리고 태연한 상수 특유의 행동들을 매력적으로 살리는데, 쉽지 않은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구씨나 상수는 모두 세상사에 초연하다. 물론 구씨는 상처가 깊어서, 상수는 제멋대로라서 그런거지만 어찌 되었든 겉으로 보았을 때 그들 모두 지지고 볶는 속세에 조금 물러서 있다. 그런 점이 세상이리저리 치여서 상처받은 여자 주인공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게다가 둘다 말수도 적고 마초적이다.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면이 강한, 선 굵은 남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이것 역시 여성들에게 충분히 매력으로 다가올 요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중요한 반전이 있으니, 그렇게 거칠어 보여도 중요한 타이밍에는 자기 여자의 상처를 보듬어준다는 것이다. 상수는 은정(전여빈)의 힘든 표정을 보고 농담인 듯 "안아줄까요"라고 말하고, 은정이 자기 상처를 꺼내는 순간에 조용히 귀 기울일 줄 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소주잔 시퀀스(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나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구씨는 염미정(김지원)이 던진 부탁(우편물을 맡아달라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끝까지 지키며, 그녀가 맘고생을 하자 답답하다는 듯 툴툴대기도 한다. 그 외에 라면을 끓여주고 모자를 주워주는 등 알콩달콩한 장면들은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딘가 거칠고 초연해 보이지만 나의 상처는 보듬어 주는 남자. 이건 마치 귀여운 얼굴에 몸매는 성숙한 이성을 좋아하는 심리와도 비슷하다고 할까. 좀 욕심스러워 보여도 사람들은 늘 짜릿한 반전을 원하는 법이다. 비록 현실에서 찾기 어렵겠지만, 드라마는 그런 판타지 위에 존재하고, 그런 판타지를 현실에 가져와 실제로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게 배우의 힘이다. 그리고 손석구는 그걸 제대로 연기할 줄 안다.


그가 나온 인터뷰나 방송도 찾아봤는데 개인적인 성격이 구씨나 상수랑 비슷하지는 않아보였다. 구씨나 상수는 다정한 마초남이고, 특히 동물적인 야성이 살아있어서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손석구 배우는 오히려 세련된 도시남자의 성향이 강해보다. 잘 웃고 매너 좋은 젠틀맨의 느낌이고, 이서진 배우가 예능에 나왔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다. 아무렴 어떠랴.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것이고, 손석구는 배우로서 좋은 타이밍을 만났다. 올해는 그의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예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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