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13. 2022
<나는 SOLO>라거나 최근 연애 예능을 보면서 흥미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불쑥 화를 냈을 때이다. 예를 들어 10기 영식이 현숙의 선택(영철이 좋아)을 두고 화를 냈을 때(선택을 이상하게 하네). 이런 때는 진짜 감정이 올라오는 결정적인 순간이라 중요하다. 보통 때에는 마음 안에 숨겨져 있던 누군가의 진심이 여러 겹의 껍질을 깨고 밖으로 불쑥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가 나는 이유를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질투가 나서, 자존심이 상해서, 상처받아서, 혹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화가나지만 이것을 명확히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는 한다. 너가 걱정되서, 보고있으니 안타까워서, 니가 하는 행동이 상식에 어긋나서. 감정이 화를 내면 이성은 후다닥 명분을 찾다. 이럴때 감정은 사고를 치는 철딱서니 상사같다. 뒷처리를 맡은 아랫사람들은 손발이 바쁘다. 급히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이유를 찾는 이성처럼.
때로는 이런 과정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그럴만해서 그러는거야. 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 눈에는 뭐가 진실인지 훤히 보이기 마련이다. 또 아무리 공들여서 꽁꽁 싸맨 포장지도 시간이 흐르면 세월에 마모되어 벗겨지고는 한다. 숨겨졌던 진짜 감정이 머쓱하게 고개를 드는 순간이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마음의 결정권자로서 감정의 힘이다. 감정은 연약하며 섬세하고, "이성적이지 않다"는 둥 별의별 모함을 다 받는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감정이다. 가장 먼저 얼굴의 표면에 도착하는 것도 감정이다. 그 강력하고 신속한 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반면 이성은 허당이다.
평소에 날카로운 척 별의별 잘난척을 다 하지만 보통 감정보다 한 발 늦는다. 그리고 감정이 내린 결정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괴감이 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명분을 찾으며 우리 마음을 보호한다. 괜찮아. 너는 객관적으로 반응한거야. 슬프거나, 욱하거나,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야. 조금 가식스러울지 몰라도, 이 유능하고도 충실한 조력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받아들이기 싫은 진실에 눌려 금방 무너졌을 것이다.
이런 환장의 커플, 감정과 이성의 콜라보가 우리를 어지럽힌다. 그러니 이다지도 살벌한 연애의 한복판에서 상대의 감정과 이성을 구분해 알아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항상 양자가 같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하며 살펴야 하는 것이다(너의 진짜 마음은 뭘까?)
또 진정한 솔직함이란 감정과 이성을 따로 알아보고 인정하면서 용기내 말하는 경지일지도 모른다(머리로는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못하겠어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강인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사실 도를 닦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