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01. 2022
가끔 며칠을 무리해 일을 하고 나면 다음날 몸살을 한다. 힘들 때 바로 몸살 하면 좋을 텐데. 미련한 몸뚱이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이제 보니 어제 힘들었네. 아이고 나 죽겠네.' 그런다.
마음도 그렇다.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몇 날 며칠을 앓는다. 몸살이 아니라 맘(마음)살인가. 함께 있을 때에는 모른다. 단지 무언가가 자꾸만 마음에 찌르르 날아와 푸드덕푸드덕 부딪히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그 순간에 진동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꼭 깨달음은 뒤늦게 오지.
집에 돌아오고 나면 비로소 앓이가 시작된다. 자꾸만 부르르 떨어대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진정시키려고 자장자장 의미 없는 말을 되뇌어본다. 소용없다. 그때부터 짧지 않은 시간을 앓는다. 고민하고, 새삼 아파하고, 새로 분노하고, 다시 행복해하며. 뿌옇던 감정의 정체를 비로소 선명하게 알아보고 거기다 정성스레 이름표를 달아주고 나면 비로소 맘살은 끝이 난다.
입에 넣은 음식이 바로 소화되는 게 아닌 것처럼. 위와 장을 거쳐 내 몸의 피와 살로 붙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가슴으로 겪은 일이 나의 온몸을 관통하고,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둔 감성의 토양을 지나쳐 나의 감정으로 감각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마음은 여리고 느린 달팽이다. 그리고 감정을 꼭꼭 씹어 소화하는 데에는 늘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나는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지나가는 순간들을 감각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잠시 동안만, 때로는 하염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