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13. 2022
일요일 오전에는 프렌치 토스트를 먹는다.
쫄쫄 굶다가 먹어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아 미처 깨어나지 않은 입에 넣는다.
퐁글퐁글한 식감, 계란과 설탕과 버터 향이 뒤섞인 달큰한 냄새. 메이플 시럽에 살짝 적시고 생크림은 듬뿍 올려서 입에 넣으면 그 부드럽고 촉촉하고 달달한 빵의 맛과 감촉이 입 안을 채운다.
요즘 단 것을 절제하고 있다. 그래도 이건 포기가 안 된다. 아니, 그래서 더 먹는다. 주말 마다 찾아오는 악마의 맛. 나는 버선 발로 헐레벌떡 뛰어나가 문을 열어젖힌다. 공복 상태에 때려넣으면, 바로 슈가 하이가 '띠링' 오면서 온 몸이 달달하게 녹아버리는 느낌이다. 건강에 좋을 리 없다. 그래서 맛있다.
평소에 인간관계에서 존중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존중 받으며 만나고. 존중 받으며 일하고.
그런데 가끔은 무시당해서 즐거울 때가 있다.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하찮게 대할 때. 혹은 어느 순간 스르륵 주도권을 갖고 가서는 관계를 흔들어 댈 때. 어이없지만 짜릿하다. 그런 불쾌한 순간마저 유쾌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매력인가 보다. 물론 그 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나는 곧 내 위치를 복권한다. 승리는 나의 것.
한 10년 전의 일인가.
폰에 있는 사진이랑 메모가 너무 소중해서, 비번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전 안 쓰던 비번을 걸고, 그 비번을 또 까먹어서 이리저리 만져대다가 폰을 포맷하게 됐다. 그래서 다 날렸다, 하하. 이걸 적는 지금도 쪽팔린다. 대체 뭘한거야? 그런데 그 쇼를 하고 애지중지 아끼던 것들을 모두 날렸을 때, 이상하게 묘한 희열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백이 주는 희열. 불이 활활 타오른 뒤에 남아있는 한 줌의 재를 보는 느낌.
이쁜 옷을 입었을 때에는 조심조심 행동한다.
그런데 가끔 실수로 옷에 뭔가를 쏟을 때가 있다. 어머나 지워지지도 않는 거네. 망했네. 그 순간 몰려오는 커다란 실망감의 뒤편으로, 어느 한 구석에 숨어 킬킬대고 있는 못된 쾌감의 정체를 알고 있다. 놓치고, 잃어버리고, 망가지는 순간마다 너는 찾아오지. 알고 있었어. 익숙한 존재. 이상한 감정.
일요일이 끝나가니 별 생각이 다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