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16. 2023
연애에 대한 깨달음은 늘 한 템포 늦게 온다.
어쩌면 이건 별빛을 바라보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저 별로부터 출발해 몇 광년이 흐른 후에야 나의 눈에 도착하는 빛. 우리는 뒤늦게서야, 어쩌면 그 별이 이미 사라지고 난 후에야, 그것이 한때 얼마나 찬란히도 아름다웠는지를 감각하게 된다. 너무 늦어버린 리액션. 지나간 연애를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지난 사랑에게 쏟지 못한 정성을 새 사랑에게 쏟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새 연인이 이걸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 사람은 새로운 성격과 새로운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하지만, 그래도, 한다. 이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내 안에 쌓인 감정을 홀로 풀어내는 과정이니까.
반대로 지난 사람에게 던지지 못한 화를 새 사람에게 투척하기도 한다. 아니, 그냥 불쑥 튀어나와 버린다. 그게 가시 돋친 말이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누군가를 대신해 이유 모를 화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새로운 상처를 받는다. 제때 치료하지 못한 상처는 트라우마로, 불쑥 뻗치는 화로, 새로운 미안함으로, 한으로 모습을 바꿔나간다. 지나간 연애의 실타래를 지금에서야 푸는 우리는 늘 감정의 시차로 인한 곤란을 겪는다.
우린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방식의 사랑을 제때 주는 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선입견 없는 사랑'에 대한 격언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그리 성숙하지 않으며, 지나간 사랑의 그림자는 자꾸만 현재의 연애에 드리운다.
어째서 연애에 대한 깨달음은 그것이 종료되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가. 마치 거울을 보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는 서로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야 전체를 온전히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깨달음을 실천하기에 너무 늦었다.
아아 엿같은 연애의 딜레마. 하지만 우리가 연애와 깨달음 사이의 시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여태 해주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그것의 주인에게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늦게나마 사랑을 속삭이고, 멀어지기 전에 감정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 조금 덜 슬퍼질 것이다. 그런 평안함을 얻기 위해 자꾸만 연애를 반복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