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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5. 2023

연진이와 서세이

<더 글로리>, <왕좌의 게임> 속 그녀들이 매혹적인 이유


<더 글로리> 포스터



<더 글로리> 시즌2를 기다리던 중 나는 내가 '연진'에게 매혹됐음을 깨달았다. 


매혹된다는 것은 좋아하는 감정과는 좀 다르다. 누군가를 향한 호감은 우리 마음의 허락을 거쳐서 표면 위로 드러난다. 누군가를 보고 설레고, 마음이 가고, 그런 스스로가 안전하다는 (적어도 비윤리적이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을 거쳐 활짝 만개하는 마음이다. 


매혹은 호감과 비슷하지만, 훨씬 심플하고 강렬하다. 무엇인가 당신의 마음을 움켜쥐고 흔드는 그 순간 매혹은 곧바로 완성된다. 그것은 당신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안전 수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다. 오로지 마음의 흔들림으로 결정되는 것이 매혹의 세계다. 호감이 마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면, 매혹은 테러리스트다.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전자를 추구하면서 후자를 잊지 못한다. 


<왕좌의 게임> 시즌8 공식 트레일러 캡처


연진에게 매혹됐음을 알았을 때 떠오른 캐릭터가 하나 있다. 바로 '서세이', 내가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사랑한 캐릭터다. 


둘은 시리즈의 공식 악녀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그 욕망이 본능적이다. 의외로 모성애가 강하다. 물론 그 모성애는 자기애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자식을 향한 외부의 위험을 없애고, 그걸 실행하는 자들을 부숴버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이 얼마나 악하고도 솔직한 마음인지. '너보다 나와 내 자식이 훨씬 중요하다'는 선명하고도 이기적인 태도는 사회 속에서 다듬어지기 전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었던 못된 본능을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 둘은 아름답다. 

모니터 속에서 어떤 패악을 부려도 그녀들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이쁜 외모를 말하는 건 아니다. 언제나 여왕을 연상시키는 그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야말로 아름답다. 그들은 자신의 목표를 지상의 과제로 삼고, 오로지 그걸 위해 달린다.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주변 사람을 무참히 부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그 확신에 찬 얼굴은 반란을 꿈꾸는 악당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자의 그것이다. 그래서 연진과 서세이는, 어떤 위치에 있든 상관없이 늘 여왕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리 이기적이라 한들, 타인의 고통에 아랑곳 않고 그런 마음을 내뿜기가 쉽지 않다. 도덕 때문이든 법 때문이든. 여왕의 태도를 지니기도 어렵다. 당신은 현실에서 진정으로 여왕의 태도를 몸에 지닌 여자를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건방지거나 못됐다는 것과 좀 다른 문제다. 그런 품위와 확신은 현실에서 쉽게 마모되곤 한다. 그래서 <더 글로리>와 <왕좌의 게임>은 그녀들이 악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두고 있다. 그렇게 잘 깔린 카펫 위로 판타지 속의 악녀들은 우리 앞에 현현한다. 


현실에는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래서 스크린 안에서 유독 매혹적인 그녀들의 유혹과 대면하는 것은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만약 동은(송혜교)이 연진(임지연)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면 나는 아마도 안심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뻐할까? 그건 다음 시즌을 보는 내 마음이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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