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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07. 2023

자신의 수치와 대면하는 강인함

어렸을 때는 좋은 감정에 많이 집중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영화를 왜 좋아하나. 나는 그를 왜 좋아하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왜 설레나. 그 실마리를 좇아 들어간 곳에는 나의 취향의 세계가 있었다. 마치 흰 토끼를 쫓아간 곳에 펼쳐진 이상한 나라처럼. 탐험의 순간들에 푹 빠진 것은 이상하지 않다. 


요즘은 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다. 싫었던 감정에 집중해 본다. 쉽지는 않다. 이미 일상에 지쳐 에너지가 없는 마음으로 싫은 감정을 복기하는 것은. 그래도 그래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왜 그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까. 어째서 그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표정이 굳었을까. 왜 그 사람의 스쳐지나 가는 반응에 상처받았나. 어째서 그 자리를 피해 쫓기듯 나와 작은 나의 방으로 도망쳤을까. 최근 몇 년 간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러다 보니 점점 무뎌졌다. 민감함도 돌보지 않으니 무뎌지더라고. 보기 좋게 다듬어지는 것이 아니라 녹이 슬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성장하고 싶은 나는, 싫은 감정의 상자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들은 대부분 나의 수치를 건드렸다. 나는 과거 비슷한 순간에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비슷한 순간이 오면 도망쳤고, 그럼에도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그래서 그 순간을, 상대를 탓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싫어. 이런 상황을 만든 너도 싫어. 하지만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한 것은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내 자신의 나약함이었다.


감정을 다스리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전과 다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질색하는 스스로와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야 한다. 거기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이 있다. 나는 내게 아무런 상처가 없다고 믿고 싶고, 강하다고 믿고 싶고, 그래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내가 끝내 그렇지 못함을 인정하는 과정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수치심과 대면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리고 정말 강인한 사람은 거부감이 느껴지는 순간에 그 상황을 부수고 상대를 짓밟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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