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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07. 2024

사랑이 계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애 프로 전성시대, 사랑의 신비는 유지될 수 있을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은 단연 <나는 SOLO> 같은 연애 프로다. 그러다 보니 매주 방영분이 나가고 나면 출연자를 둘러싼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남의 연애 보면서 "어머어머 쟤 좀 봐" 하는 게 제일 재밌는 법이다.


연애 프로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출연자의 캐릭터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 일주일, 길어봤자 고작 한 두 달 동안 그들을 관찰하고, 이 중에서 일부만을 방영한다. 또 재미를 위해 편의적으로 고른 모습만 방송에 나가다 보니, 출연자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게임 캐릭터처럼 비칠 여지가 있다.


화제를 위해 윤색된 방송 안에서, 출연자는 단순화되고 몇 개 인간 유형으로 특정된다. 또 짧은 기간 안에 매칭이 이뤄지고 그 선택을 시청자에게 설득해야 하다 보니, 서로에게 반하는 과정도 몇 가지 전형적인 스토리로 정리된다. 그러니까 연애 프로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매력과 연애는 우리에게 익숙한 타입으로 분류되고 정형화된다. 방송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실의 사랑은 좀 다르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혹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누군가는 단순히 이쁘거나, 잘생겼거나, 허리가 잘록해서, 어깨가 넓어서, 학벌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플러팅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흐릿한 이유로 매력적이다. 런 요소가 매력을 더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의 매력은 오묘하고 복합적이다. 열정적이면서도 침착하고 순수하면서도 악독한데, 그 기가 막힌 배합 비율을 말로 설명하기가 되게 어렵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의 매력은 오래 두고 보아야 서서히 눈에 보인다. 처음엔 맹숭맹숭 존재감이 없지만,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안정감을 뿜어내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고층 건물처럼 화려해서 단번에 눈길을 끄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찾은 고향처럼 마냥 포근해서 이상하게 자꾸 찾고 싶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이렇게 복잡한데, 누군가의 매력을 온전히 측정수 있을까?



연애 프로는 어느덧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늘 우리 곁을 맴돈다. 그리고 익숙한 것들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연애 프로를 관람하는 방식은 연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스며들고,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새 사랑과 연애라는 것이, 스펙과 연애력을 두고 벌이는 게임처럼 인식되는 인상이 있다. '이 사람의 매력은 이 정도고, 저 사람의 매력은 이 정도야' '저 사람은 모두 사귈 수 있고, 이 사람은 선택받기 글렀어' 서글프게도 이런 분석은 곧잘 현실과 부합한다. 하지만 <나는 솔로> 속의 일주일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듯, 연애 프로가 보여주는 사랑도 전하지 않다실은 종종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진다.


출산과 양육까지 생각한다면 결혼과 연애 모두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세간의 잣대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이 바로 이곳이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어쩌면 먼 미래에 과학과 기술로 사람의 욕망과 상호작용을 모두 분석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사랑의 신비 해체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마지막 한 줌의 비 안에 사랑과 연애는 오래 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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