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영화, 여러번 본다 vs 다신 안본다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19. 2022
영화를 보지 않는 핑계를 대기 위한 나의 글에 여러분은 설득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심이니까.
너무 좋은 영화 말이지, 그냥 좋은 영화 말고 진짜 완전 너무 좋은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여러 번 본다 vs 다시는 안 본다
여러 번 보는 경우는 흔히 알려져 있다.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행위로. 그런데 반대로 다시는 안 보는 케이스도 있는데, 별로 안 알려져 있지만 그게 바로 나야.
좋은 영화를 다시 열지 않는 심리를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지면 첫사랑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심리라고 말하겠다.
내 인생의 한 때를 바쳐 열렬히 사랑한 첫사랑이 있다면, 좋은 날을 골라서 한 번 만날 수는 있어도 시도 때도 없이 만나고 싶지는 않잖아? 그렇게 요동치는 감정을 일상에서 겪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귀하신 분을 누추한 곳에 들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 평범하고도 안온한 일상과, 격렬한 로맨스 사이에는 안전한 가림막이 필요하니까. 그게 사랑하는 영화를 대하는 나의 심리와 비슷할 것.
"평론가님의 인생 영화는?!"이라는 질문에 짜릿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늘 "저는 그런 거 없어요"라며 얼버무려 송구한 내게도 의미 있는 영화들은 있다. 등단할 때 다뤘던 <자객 섭은낭>(2016)이나 굉장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쓰리 빌보드>(2018) 라거나(사랑해요!!!). 글을 쓸 당시에는 여러 번 재관람했다. 그런데 글을 떠나보낸 후로는 다시 열어본 적 없다.
특히 <자객 섭은낭>은 내게 특별한 영화인데 '그냥 저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온 몸으로 영화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지 못해 슬펐다(이 오글거리는 감상이 진심인 게 나도 신기하다). 영화를 보며 이런 느낌을 받은 그 후로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만일 어느 게으른 오후에 내 작은 노트북으로 <자객 섭은낭>을 열고, 이 영화가 예전과 다르게 별 볼 일 없이 느껴진다면 그때 느낄 새로운 슬픔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다시 열어볼 엄두가 안 난다. 비겁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얼마 전에는 <헤어질 결심>을 살짝 열어보다가 후다닥 껐다. 그건 건조해진 나의 일상이, 거기 잠식된 내 눈이 '생각보다 별론데?'라는 감상을 전할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혹은 최애가 사정없이 망가지는 영상을 자체 금지 영상으로 정하고 지하에다 봉인해두는 팬의 심정이랄까.
너무 좋은 영화, 다시 보실 건가요? 이건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날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만큼이나 정답이 없고 취향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혹은 체질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자기 생애 최고의 영화를 수시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때때로 부럽기도 하다. 안 보고 있지만,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