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고민이 있다지만, 그래도 조금씩 다른 것 같네요

누구나 고민이 있다고들 한다. 왕자나 거지나 모두 나름의 고초가 있다고. 그렇다면 왜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할까? 어차피 어떻게 살아도, 무엇이 되어도, 언제나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아니면 이 말은 그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서적 거지들을 위한 감상적인 변명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꽤 오래.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어떤 삶에서나 고민이 있겠지만, 더 나은 층위의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 배를 곯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대신, 오늘 쌓인 일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욕먹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낫겠다. 어떻게 하면 지친 몸을 집에 뉘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상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잘 쓸지를 고민하는 일상이 좋다. 똑같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고민을 만들어내고 괴로워하지만, 그것들의 층위는 같지 않다. 생존과 직결될수록 처절하고, 이상에 가까워질수록 복합적이다. 악취가 진동을 해서 어떻게든 버리고픈 고민이 있는 반면, 쓰고 시지만 달짝지근해서 은밀한 만족감을 주는 것도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층위를 무시하며 "너나 나나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있는 자의 교만이거나, 없는 자의 현실도피다. 사실은 그것들이 색감과 무게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고민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목표겠지만, 원하는 층위의 것을 안고 살아가는 삶도 그럭저럭 멋지지 않은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째서 늘 고민은 끊이지 않는지 몰라 마음이 괴로워질 때, 저 길을 향해 찬찬히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평온해진다.

없앨 수는 없겠지만, 원하던 것으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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