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의 과거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오래전에 있었던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그런 시간이 내게 있었나? 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스라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존재하긴 했지만 더 이상 내 곁에는 없고 알아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는 허황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당신의 미래이자 현재였고, 당신을 충분히 즐겁게 해줬으니, 이제 내가 남고 싶은 곳에 남아 그곳에서 살다 죽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던 이별의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그때 살았던 하숙집의 낡은 벽지에 스며들었나. 학교 식당에서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그 공간에 입김으로 남아 조용히 머물다 사라졌을까. 한때 나누었던 다정한 말들은, 까불대던 몸짓들은.
과거는 내 뒤에서 낭창하게 흔들리는 꼬리도 아니고 달랑거리는 꼬리표도 아니다. 내 발걸음 뒤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도 아니고 발치에 처량하게 고여있는 물웅덩이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만난 사람들의 기억에,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 속에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그걸 찾기 위해서는 마치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를 설득해 문을 열듯, 정성스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 문지기는 제 멋대로라 자주 자리에 없다. 내가, 우리가 보냈던 그 시간들을 찾을 길이 아득하다.
그럴때 내가 만든 과거가 더이상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어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과거를 짐보따리처럼 몽땅 쥐고 다닐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어느새 봄날의 눈처럼 녹아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흔적이라 부를 수 있는 향기만이 남았다. 그건 치명적이지도 않지만 그리 빨리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저 잔열처럼, 여운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는 것을 보니 연말은 연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