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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7. 2023

마틴 맥도나의 변화를 감지할 것 <이니셰린의 밴시>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놓친 뒤로 내 운명을 홀로 저주하며 마틴 맥도나를 기다리는 기우만 지내왔는데, 그 영화가 드디어 다음 주에 개봉한다. <이니셰린의 밴시>다.


마틴 맥도나는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카로운 첫 키스 같은 작자다. <쓰리 빌보드>(2018)로 완전히 반해버렸고 그 후에 찾아본 <세븐 싸이코 패스>(2014)나 <킬러들의 도시>(2009)는 너무 내 취향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스스로의 능력을 맹신하고 자랑하는 (약간 XX 같은) 오만방자함도 마음에 든다. 재능 있는 예술가에게 겸손은 거추장스러운 가면이다.


헛소동처럼 돌고 도는 말들의 사이클, 아둔하거나 냉철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들, 영국의 역사를 연기처럼 깔아 둔 채로 선명하게 이어가는 이야기, 곳곳에 압정처럼 찔러 둔 부조리. 이 황폐하고 황홀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그에게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라는 것 밖에 없다.


<이니셰린의 밴시> 스틸컷. 좌측에 앉아 있는 '브렌단 글리슨'과 창문 너머의 '콜린 파렐'

얼마 전에 <이니셰린의 밴시>를 접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출하다.

아일랜드의 외딴섬 '이니셰린'에서 '파우릭(콜린 파렐)'과 절친한 사이였던 '콜름(브렌단 글리슨)'은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다. 대체 왜? 그걸 알아가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특히 브렌단 글리슨의 연기가 매우 좋다. <카우보이의 노래>(2018)에서도 느꼈는데, 이 배우의 행동 하나하나는 어쩐지 운명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말, 걸음 하나까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결과로서 이행되는 것 같은 숙연한 인상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작품 안에서 자주 천사 혹 저승사자처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보인다. 독특하고도 귀한 아우라다.



그토록 기다리던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난 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다.

마틴 맥도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냉소적이며 재기 넘쳤던 그의 작품세계에 스며든 이 서늘한 기운은 무엇인가.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마틴 맥도나의 작품을 즐겨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리라 예상한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그의 변화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답을 지금 말할 수는 없겠다. 영화는 개봉 전이고, 답을 찾기 전이다. 하지만 지문이 옅어지도록 더듬고 또 더듬어서 찾아낼 생각이다. 작가가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변화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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