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06. 2023

색깔있는 감독의 색깔없는 영화, <리바운드>

젊음을 위한 익숙한 찬가

※영화 <리바운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 색깔있는 감독의 색깔없는 영화

장항준 감독이 좋아서 신작 <리바운드>를 꽤 기대했는데, 너무 무난하여 약간 당황스럽다.

코미디 스포츠 영화로서 <리바운드>가 보여주는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다. 시도하는 코미디는 꾸준히 소소하게 적중하고, 스포츠물로서 쾌감도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진행이나 캐릭터 구성,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에서 그야말로 클리셰가 반복된다.


평소 예능에서 센스가 돋보이는 장항준 감독과 <킹덤> 등 시리즈물에서 필력을 자랑하는 김은희 작가가 뭉쳐도 이런 결과라면, 마음이 아프지만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각본과 연출 모두 마치 신인이 한 듯한 풋풋함이 엿보이는데, 달리 말하자면 경력에 걸맞은 연륜과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리바운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그런데 영화와 달리 현실의 리바운드는 그다지 웃기거나 따듯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재도약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리바운드> 스틸컷

# 좋은 배우들, 그리고 안재홍의 영화

<리바운드>를 이끌고 가는 것은 안재홍의 힘이다. 이 영화는 "안재홍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그의 저력에 의지하고 있다. 물론 양현 역을 잘 연기할 배우는 많다. 하지만 어색한 듯 능청스러운 어투, 미묘한데 매우 적절한 호흡(숨소리), 대사를 치는 타이밍까지 안재홍은 절묘한 연기로 <리바운드>의 웃음을 뚝딱뚝딱 축조해 나간다. 그는 생각보다 큰 배우인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규혁 역의 정진운은 아이돌 출신 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아이돌 출신 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나는 이 표현을 수정할 마음이 없다. 아이돌을 하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대체로 (연기력과 별개로)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 대사를 잘 치고, 연기를 잘하는 와중에도 어딘가 모르게 긴장된 상태로 이쁜 자세와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있다. 아마도 오랜 기간 카메라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습을 한 것이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아이돌로서는 상당한 미덕인 이 습관이 연기를 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그래서 아이돌 출신들은 연기를 시작하기 전 이런 '큐티뽀짝'함을 빼는 연습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정진운은 비교적 이런 모습이 적어서 좋다. 물론 뒤로 갈수록 클리셰 같은 표정과 연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건 배우보다는 각본의 문제인 것 같다.


기범 역의 이신영 배우는 마스크가 좋은 데다 연기가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 청춘물에서 계속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감초 같이 등장하는 교장 선생님을 연기한 배우나 장현성까지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 관객 수 예측…OTT에서 더 잘 될 것

<리바운드>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수 기준 180~190만으로 알려졌다. 성급한 판단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관객 수 100만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 무난한 코미디 영화지만 후반에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 대진표의 영향을 받겠지만 아직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건재하고 비슷한 자리에 <에어>도 있어서 쉽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이 영화는 OTT로 풀렸을 때 조회수 1위를 무난히 찍을 것 같다. 집에서 틀어놓고 간식을 먹으며 보기 좋은 영화랄까. 또 개봉 시기를 잘 맞춰 차라리 추석에 개봉했으면 가족 영화로 인기가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개봉 시기를 맞추는 문제와 관련해서 아는 바가 없어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기도 하다.


<리바운드> 스틸컷

# 어른의 성장을 위해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이 영화가 (의도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의외로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비록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의 포커스는 안재홍이 연기하는 '양현'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리바운드>는 양현의 성장담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인 동시에, 한때 농구를 사랑했고 다시 열정을 찾고 싶은 다 커 버린 어른의 눈물겨운 성장담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짜여있지는 않다. 그래서 (실화와 무관하게) 양현이라는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 농구부 아이들이 기능적으로 소비되고는 한다. 그들은 초반에 양현의 폭력적인 지도에도 반항하지 못하고, 그가 반성하고 눈물흘리자 다시 그를 너그럽게 받아준다.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대신, 양현의 태도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의 지도력 부족을 눈물과 사과 만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며, 그의 코칭을 찰떡처럼 받아들이는 이 팀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런 어색한 경직성은 실화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연출력의 부족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게 의외로 시사하는 바가 있기도 하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주 어른의 변덕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위계가 강한 사회에서 어른이 화를 내면 아이들은 반성하고, 어른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송구스러워한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보수적인 곳에서 아이들은 자주 덜 자란 어른을 양육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일면들이 이런 안 좋은 사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기능적으로 소비된다'고 해야 할지,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고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 이 영화의 결말, 어떠신가요?

앞서 말했듯이 흥행의 측면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결말 부분이다. 나는 비록 깨어지더라도 이 영화가 그들의 마지막 경기를 보여주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자막으로 처리한 결말은 힘이 부족해 보인다. 열심히 쌓아온 전개를 힘없이 후루루 무너뜨리는 느낌이. 물론 이런 연출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영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니셰린의 밴시>, 재앙은 어떻게 제의가 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