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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0. 2023

<인어공주>, 캐스팅보다 중요한 건

캐스팅, 그것을 넘어서는 노래에 대해 

<인어공주> 스틸컷


돌아온 <인어공주>(2023)의 공주님,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과 관련해 나는 차가운 태도에 가까웠다.


캐스팅 과에서 그녀가 입었을 상처도 안타깝지만, 영화에 대한 이슈가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되는 것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피씨 슈에 대한 옹호/반박은 영화 자체에 대한 옹호/반박으 쉽게 번진다. 사실은 피씨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들이 영화를 핑계 대는 광경을 보는 것은 힘겹다. 어떤 의도에서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역시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판단하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캐스팅에 관해. 예고를 보았을 때도 심드렁했다. 하지만 이런 김 빠진 차가움에 편견이 섞여 있었음을 고백한다. 피씨에 휩싸여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을 지적하면서도, 나 역시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흑인이라 캐스팅되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영화를 접했다. 


하지만 이내 놀라움을 느꼈다. 영화에서 할리 베일리는 반짝이는 재능으로 자신이 새로운 인어공주임을 증명했다. 그녀가 체화한 인어공주는 1989년 애니메이션 속의 에리얼과 확실히 다르다. 그 차이가 내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이 반짝이는 바다에서 노래하는 싱그러운 소녀라면, 할리 베일리는 깊은 심해에서 한줄기 빛을 향해 노래하는 고독한 인어다. 거기에는 여전히 순수가 남아있지만 이전보다 슬프고 아련하다. 나는 노래만으로 할리 베일리의 모든 것이 납득됐다. 물론 그녀만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 역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인어공주> 스틸컷


한편 <인어공주>는 다른 캐스팅도 흥미롭다.

울슐라 역의 멜리사 맥카시는 다른 영화에서 그렇듯 완벽한 연기를 뽐낸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뭐든 잘 소화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새삼 느끼는 순간. 심지어 노래까지 맛깔나게 소화하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인어공주>를 지탱하는 큰 축이 멜리카 맥카시다.


스커틀 역의 이콰피나는 또 어떤가. 바닷새인 스커틀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음에도 생기발랄함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변화무쌍한 이콰피나의 목소리 연기 덕이다. 나는 자꾸만 스커틀이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고 착각했다. 진정 논란 없는 캐스팅이란 이런 것 아닐까. 이 멋진 배우에게 자신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멋진 배역들이 계속 주어지기를 바란다.


<인어공주> 스틸컷

트라이튼을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무게 있는 역할을 이견없이 소화했다. 다만 애니메이션 원작의 실사 영화에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깊고 그윽한 관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연기보다 캐스팅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모닝빵 위에 육즙 좔좔 흐르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올린 느낌. 둘 다 좋긴 한데 이게 맞나?

하비에르 바르뎀의 깊고 진한 얼굴선은 조악한 CG와 만나며 더욱 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마치 개그 무대 소품으로 쓸 법한 왕관을 쓰고 에리얼을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일 때, 그러면서 바다에서 손을 휘휘 휘젓고 있을 때, 내가 본 상영관에서는 관객들이 못 참고 하나둘씩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은 죄가 없다. 


<인어공주> 스틸컷

생각보다 흥미로운 캐스팅을 보여준 <인어공주>는 의외의 부분에서 의문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다양성'을 중요한 코드로 가져온다. 이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 다만 <인어공주>는 피부색에서 다양성을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나머지 부분에서 여전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로 구분된 이 세계에서 에리얼은 끊임없이 육지를 환상화하는데, 영화는 그녀의 시선에 동조한다. 육지와 바다 사이의 위계는 흐릿하지만 강력하다.

또 어둠과 밝음도 이분화됐다. 사악한 울슐라는 검고 어두운 심해에 있고, 환상의 육지는 빛으로 가득하다. 피부색만 기계적으로 섞어놓았을 뿐, <인어공주>는 여전히 선과 악의 대립을 밝음과 어둠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런 모습은 디즈니가 진정으로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 과거 세탁 내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지를 의심하게 한다. 


모든 부분을 감안할 때, 나는 <인어공주>가 '디즈니의 만족스럽지 않으나 의미 있는 걸음'이라고 평하겠다. 재미있는 캐스팅, 미완의 포용, 그리고 여전한 노래의 감동. 


결국 내게 감동을 안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노래다. 그것이 예기치 않게 이리저리 번지는 논란이나, 부족한 완결성으로 삐죽 튀어나온 작품의 가시들을 부드럽게 잠재운다. 개봉 전 우리의 주목을 가져갔던 캐스팅, 발전된 CG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오래된 선율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자본을 총동원한 기획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예술의 힘을 목격한 셈이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돌아온 <인어공주>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그것이 촉발한 소모적인 논쟁과 마찰을 부드럽게 잠재우는 노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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