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그것을 넘어서는 노래에 대해
울슐라 역의 멜리사 맥카시는 다른 영화에서 그렇듯 완벽한 연기를 뽐낸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뭐든 잘 소화한다는 간단한 원리를 새삼 느끼는 순간. 심지어 노래까지 맛깔나게 소화하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인어공주>를 지탱하는 큰 축이 멜리카 맥카시다.
스커틀 역의 이콰피나는 또 어떤가. 바닷새인 스커틀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음에도 생기발랄함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변화무쌍한 이콰피나의 목소리 연기 덕이다. 나는 자꾸만 스커틀이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고 착각했다. 진정 논란 없는 캐스팅이란 이런 것 아닐까. 이 멋진 배우에게 자신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멋진 배역들이 계속 주어지기를 바란다.
트라이튼을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무게 있는 역할을 이견없이 소화했다. 다만 애니메이션 원작의 실사 영화에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깊고 그윽한 관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연기보다 캐스팅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모닝빵 위에 육즙 좔좔 흐르는 최고급 스테이크를 올린 느낌. 둘 다 좋긴 한데 이게 맞나?
하비에르 바르뎀의 깊고 진한 얼굴선은 조악한 CG와 만나며 더욱 큰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마치 개그 무대 소품으로 쓸 법한 왕관을 쓰고 에리얼을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일 때, 그러면서 바다에서 손을 휘휘 휘젓고 있을 때, 내가 본 상영관에서는 관객들이 못 참고 하나둘씩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은 죄가 없다.
이 영화는 '다양성'을 중요한 코드로 가져온다. 이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 다만 <인어공주>는 피부색에서 다양성을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나머지 부분에서 여전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로 구분된 이 세계에서 에리얼은 끊임없이 육지를 환상화하는데, 영화는 그녀의 시선에 동조한다. 육지와 바다 사이의 위계는 흐릿하지만 강력하다.
또 어둠과 밝음도 이분화됐다. 사악한 울슐라는 검고 어두운 심해에 있고, 환상의 육지는 빛으로 가득하다. 피부색만 기계적으로 섞어놓았을 뿐, <인어공주>는 여전히 선과 악의 대립을 밝음과 어둠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런 모습은 디즈니가 진정으로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 과거 세탁 내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지를 의심하게 한다.
모든 부분을 감안할 때, 나는 <인어공주>가 '디즈니의 만족스럽지 않으나 의미 있는 걸음'이라고 평하겠다. 재미있는 캐스팅, 미완의 포용, 그리고 여전한 노래의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