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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06. 2023

다시 본 <아마겟돈 타임>, 인상적인 순간들

※영화 <아마겟돈 타임>에 대한 스포일링이 있습니다

<아마겟돈 타임> 스틸컷


어제는 공익인권센터 '함께'에서 <아마겟돈 타임>을 다시 봤다. 두 번째 본 영화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 적어보려 한다. 



# 식탁에서의 대화 

폴(뱅크스 레페타)의 가족들은 식탁을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한 번은 할머니가 나치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도중에 아버지는 사레에 들려 켁켁 대고, 그걸 본 폴이 웃음을 터뜨린다. 할머니는 "어떻게 나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웃을 수 있냐"고 말한다. 언뜻 코미디처러 보이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에피소드다. 본능에 이끌리는 아이의 해맑음이, 그가 놓인 자리를 감도는 폭력적인 이야기와 부조화하고, 둘 간의 간극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장면은 차별을 대해 제대로 인식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채로 마냥 죠니(제일린 웹)와의 장난이 즐거워 킥킥 대는 폴의 모습과 겹쳐진다. 언제 깨질지 모를 즐거움을 지켜보며 긴장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아마겟돈 타임> 스틸컷


# 색의 연결

아이들이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갔던 장면들이 인상 깊다. 그들은 여러 색이 혼합된 미술품을 관람한다. 피부색을 바탕을 차별을 일삼으면서, 미술관 안의 '색'을 보며 경탄하는 아이러니. 그다음 장면에서 폴과 죠니는 알록달록한 작은 그림을 보며 논다. 나사에 가고 싶다는 죠니. 그 순간 다른 흑인 무리가 다가와 "너 같은 흑인은 그런데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죠니의 좌절감이 지하철을 가득 채운다. 다시 집에 돌아온 폴은 그 그림을 자신의 방에 걸어둔다. 방 밖에 나간 폴에게 할아버지가 선물이라며 색색의 '물감 세트'를 선물한다. 


'피부색'에서 시작해서 미술품, 알록달록한 그림, 물감으로 이어지는 연출은 우아하고 세련됐다. 그리고 이 영화가 얼마나 섬세하게 색이라는 소재를 이어가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차이를 드러내는지를 알게 한다. 죠니에게 색은 좌절이자 슬픔이지만, 폴에게는 선물이기도 하고, 반 아이들에게는 미술관 속의 작품의 일부다. 이다지도 다채로운 색을 누군가는 선명한 아픔으로, 누군가는 기쁨으로, 누군가는 추상적인 관념으로 감각하게 되는 잔인한 현실이 여기 있다. 


<아마겟돈 타임> 스틸컷

#남몰래 공유하는 붉은 빛깔

재밌는 포인트가 있다. 영화에서 폴은 붉은 계통의 주황색 머리이다. 그리고 죠니는 자주 빨간 점퍼에 주황색 후드를 입고 다닌다. 이다지도 색에 민감한 영화에서 아이들 둘이 남몰래 공유하는 '붉은빛'은 심상치 않다. 이 둘을 연결시키는 은밀한 상징 같기도 하다. 그리고 폴이 죠니를 경찰서에 두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온 마을이 붉은색에 뒤덮인 듯한 연출이 등장한다. 붉은 벽돌집, 붉은 낙엽, 붉은 조명.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떠났지만, 폴의 온 세상이 죠니의 존재감으로 뒤덮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감상적일까.


 

<아마겟돈 타임> 스틸컷

#죠니와 할아버지

다시 보니 영화가 폴의 할아버지 애런(안소니 홉킨스)과 흑인 꼬마 아이 죠니를 연결시킨 지점이 많다. 

폴이 공원에서 할아버지에게 '다른 아이들이 흑인 친구에게 나쁜 말을 한다'고 말했을 때, 애런은 그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돌려준다. 이 노골적이고 유치한 대화가 유쾌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둘은 같이 우주선 모양의 모형을 날린다. 이 모형은 나사에 가는 것이 꿈이라는 죠니를 연상하게 한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모형의 비행. 폴, 애런, 그리고 죠니의 꿈이 스크린 위에서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장면이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애런은 임종을 맞는다. 직전 장면에서 '행동하라'고 했던 애런의 말은 유언이 됐다. 그리고 애런과의 이별 뒤에 폴이 집에 돌아왔을 때 죠니가 아지트에서 튀어나온다. 이것은 마치 죠니가 애런의 분신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애런 역시 젊었을 때 인종적인 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한 적도 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죠니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고, 영화가 죠니와 애런을 거듭 겹쳐놓는 것을 보며, 그의 미래가 마냥 어둡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근거 있는 추정은 아니다. 그냥 그런 예감이다. 비록 경찰서의 모습을 끝으로 쓸쓸하게 영화에서 퇴장했지만 충실한 삶의 끝에 애런 같이 멋진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아마겟돈 타임> 스틸컷

#철창을 사이에 둔 대화

다시 봐도 아름다웠다. 사립학교 철창을 사이에 둔 폴과 죠니의 대화. 이때 죠니의 태도는 폴이 그를 약간은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는 '나중에 아지트에서 대화하자'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 말이 마치 '나와 있는 모습을 네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다면 둘만 있는 장소에서 보자'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관계의 약자는 상대를 배려하기 마련이다(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문득 떠올라서 적어봤다).


반 아이가 죠니를 두고 'nigro'라고 표현했을 때, 폴은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서 한 동안 멍하니 있다. 이것은 어린 영혼이 처음으로 폭력을 마주했을 때의 파동을 상기시킨다. 지금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렸을 때 우리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사소한 폭력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사소하지 않은. 어쩌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 그런 여리고 심각한 순간을 이 영화는 포착한다. 이 순간은 폴을 영원히 바꿔놓았고, 폴은 계속 이때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변화인지 성장인지 퇴색인지 모를 순간들을 하나 둘 밟다 보면 점차 그 느낌에 익숙해지다 더 이상 감각되지 않을 때가 오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유년기와 이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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