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 부부인 수진(정유미)과 현수(이선균) 사이에는 여러 불안한 요소가 잠재돼 있다. 수진은 임신한 상태. 이것은 기본적으로 축복이지만 수진을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로 만든다. 현수는 배우로서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현수가 어느 날부터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 자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이것은 수면 위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불안요소다. 수진이 아이를 출산하며 불안은 더 커진다. 몽유병 상태의 현수가 아이를 해치면 어떡하지? 무당이 찾아오며 불안은 공포로 번진다. 어쩌면 귀신이 씐 걸지도 몰라. 무당은 귀신의 정체(이름)를 알아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귀신의 정체는 뭘까. 내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 귀신의 정체를 찾는 과정에서 숨겨졌던 과거의 불안들도 튀어 오른다. 결국 현수는 자신에게 몽유병이 있을 뿐이라 믿고, 수진은 현수에게 귀신이 씐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영화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결론은 모두 다 보여준다. 수진은 현수가 무섭고, 현수는 수진이 두렵다. 서로를 의심하는 둘. 상대에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이런 공포는 상징적이고,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가야 하는 우리. 너는 과연 지금 이 모습대로 내 곁에 남아줄 수 있을까? 모르던 괴물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하나. 내 안의 괴물이 발각되었을 때, 네가 나를 떠나면 어쩌나. 영화는 몽유병이라는 소재를 탄탄한 가족 한가운데 던진 다음, 그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떨림을 관찰하며 우리 안에 숨어있던 약하디 약한 불안의 고리를 드러내 보인다.
둘은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말을 가훈으로 삼아 되새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어쩐지 강박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강박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소환되고는 한다.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부부는 '함께여도 절대 이기지 못할 위험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탄탄대로를 원하지만, 흔들 다리를 건너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래서 맞잡은 두 손. 놓지 않겠다는 약속. 이 흔들림이 언제 멈출지 모르겠지만, 함께라면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정말 그렇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며 한없이 이어지는 걸음을 담아낸 영화가, 바로 <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