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14. 2023

영화와 웹툰의 결합, 어느 평론가의 걱정

'PD저널'에 글을 쓰면 감사하게도 늘 순위권에 글이 오른다. 많은 독자들이 재밌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PD저널 같은 경우 글의 취지에 맞게 편집을 잘하신다는 인상을 자주받는다. 삽입되는 사진, 부제목, 빠른 편집 시간 등에서 감각이 돋보인다. 


이번에는 웹툰에 기반한 콘텐츠에 대해 썼다. 사실 특정 영화 비평을 하고 싶었는데, 요즘 쓸 만한 영화가 잘 없기도 하거니와 웹툰을 영상화 한 작품들이 워낙 많아서 한번 묶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내용은 때 이른 우려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현실화됐다고 느낀다. 영화는 웹툰에 의존하고, 웹툰은 영화를 의식하는 경향. 둘의 만남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 윈-윈으로 남을 수 있을까?


 




영화와 웹툰 결합 지켜보는, 어느 평론가의 때 이른 걱정


<무빙>, <마스크걸>, <콘크리트 유토피아> 포스터_출처:PD저널


[PD저널=홍수정 영화평론가] 요즘 극장가에서 특히 환대받는 영화 유형이 있다. 바로 '웹툰에 기반한 영화'다.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한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추석 대전에서 승리해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관객 수 150만을 넘어섰다. 얼마 전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해 올해의 한국 영화 중 관객 수 3위를 기록했다. 무려 384만. 여전히 상영중이다. 웹툰 '유쾌한 왕따'가 원작이다.



영화뿐인가. OTT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진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슈를 휩쓸었던 <마스크걸>도 웹툰에 기반했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의 상당 부분도 '웹툰과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이었다. 디즈니플러스의 킬러 콘텐츠인 <무빙>은 강풀이 그린 동명의 원작 웹툰이 워낙에 수작이다.



매력적인 두 매체의 만남은 환영할 만하다. 탄탄한 서사를 갖춘 웹툰과, 시각적 매혹을 선사하는 영화가 손을 잡다니. 이제는 소위 '각'이 보이는 웹툰에 댓글이 먼저 달린다. 영화로 만들어 주세요. 이런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징조다.



웹툰에 기반한 영화가 흥행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탄탄한 서사, 개성 강한 캐릭터. 원작 웹툰의 골수팬까지. 게다가 웹툰 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 풍부하다.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 소재의 다양성과 독창성마저 확보할 수 있다. 관객은 선택의 여지가 늘어나니,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둘의 만남을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것은 '예술'의 차원에서 한 얘기다.


지난 7월 20일 용산CGV에서 열린 '무빙'의 Creators Talk에서 강풀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하지만 문제는 영화와 웹툰 모두 '상품'의 성격도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 투자금이 몰린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웹툰에 기반한 영화'는 인기 상품으로 인식될 것이다. 상품의 제작자인 아티스트들은 이런 트렌드에 반응한다. 영화를 의식하는 웹툰, 웹툰에 의존하는 영화가 늘어날 수 있다. 아름다운 만남이 기형적인 결합으로 변질될 위험은 상존한다.



영화, 웹툰 등 매체들은 고유한 영역을 간직한 채 이따금 합쳐져야 매력적이다. 웹툰에 마냥 의존한 채로 시나리오 개발에 게을러지는 순간, 영화는 자생력을 잃는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영화를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간택을 기다리는 불완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어느 매체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영역에 천착하지 못하는 예술은 금세 무너진다. 이때 둘의 성공적인 결합은 불행으로 변질되고 만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너무 좋아서 모든 것을 한없이 내어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런 만남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영역을 유지한 채 일부분을 내어주는 만남이 아름답다. '홀로서기'는 혼자 보다 둘일 때 더 필요한 말이다.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만남은 축복이지만, 지나친 의존은 차라리 저주다. 지금 우리는 영화와 웹툰의 성공적인 결합들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이 '유명한 웹툰을 영상화한 것에 불과한 영화', '영화화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웹툰'을 양산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걱정이 팔자인 어느 한 평론가의 때 이른 우려일 것이다.



출처 : PD저널(http://www.pdjournal.com)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모르는 너를 위하여, <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