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극장가 트렌드
※ 얼마전 '스프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근 <노량: 죽음의 바다>가 흥행하며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공유합니다. 글에서 말하는 '올해'는 2023년을 의미합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연말이 되면 평론가는 긴장된다. 한 해를 정리하며 지난 시간을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올 한 해(2023년), 우리는 어떤 영화를 찾았을까. 2023년 개봉한 영화들을 둘러보며, 유독 더 고민이 깊어졌다. 리스트 사이에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를 순위대로 얘기해 보면 1위 범죄도시 3(관객 수 1068만), 2위 서울의 봄(〃 932만), 3위 엘리멘탈(〃 724만), 4위 스즈메의 문단속(〃 557만), 5위 밀수(〃 514만), 6위 더 퍼스트 슬램덩크(〃 479만), 7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421만), 8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402만), 9위 콘크리트 유토피아(〃 385만), 10위 아바타: 물의 길(〃 349만) 순서다. 21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통계를 참고했다.
생각에 잠겼던 나는 다른 통계 하나를 더 접하고서 비로소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올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순위다. 국내와 전 세계 관객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더 넘버스(The Numbers)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는 그레타 거윅이 연출한 <바비>였다. 이어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만강홍: 사라진 밀서> 등의 순서다.
리스트를 보다 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지만,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지 못한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선택이 아니라, 회피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성향을 드러내 보인다.
한국 관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영화 중에는 <바비>와 <인어공주>가 있다. 두 영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에서 유독 인기가 없었다. <바비>는 관객 수 58만 명, <인어공주>는 64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PC(정치적 올바름) 이슈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바비>는 젠더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 <인어공주>는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인종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 한국의 관객은 영화관에서 PC 이슈와 만나고 싶지 않아 한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PC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도, 혹은 다른 이유일 수 있다. 이 글에서 그 이유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PC를 피한 한국 관객들은 역사물을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예상 이상의 선전을 보인 <서울의 봄>과 <밀수> 모두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시대감이 명확히 느껴지지 않으나, 영탁(이병헌)만큼은 고전적인 주인공의 인상이 있다. 나머지는 액션, 애니메이션, 판타지 장르가 주를 이룬다. 그러니 이런 경향은 전 세계가 공통적이라 한국만의 성향이라고 꼬집기는 어렵다.
한국은 젠더 갈등이 심한 국가라고들 말한다. 또 우리는 정치적 격랑의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넓은 의미의 '정치(Politics)'라고 한다면, 국장에서만큼은 이와 분리되길 원하는 것이 관객의 마음인 것 같다. 그런 욕망이 박스오피스에서 읽힌다. 안도. 안타까움. 흥미로움. 어떤 감정으로 이런 현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다. 지금 한국의 관객들은 현실의 예민한 이슈를 피해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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