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있고 성실한 오컬트 작가가 한국에 나타난 것 같다. <파묘>의 장재현 감독 얘기다.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로 한국형 오컬트를 선보인 장재현은 이번 신작에서 자신의 인장을 확실하게 새긴다.
장재현이 반가운 이유는 그가 최고이기 때문이 아니다. 찐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조금 과장하자면) 오컬트밖에 없다. 그는 배우의 스타성을 이용하고, 시시껄렁한 코미디를 가미하고, 신파 혹은 러브라인을 넣거나, '점프 스케어'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우직하게 오컬트 얘기만 주야장천 늘어놓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미련함이 믿음직스럽다. '아 찐덕후다'라는 인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것을 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절제했느냐가 장재현의 진가를 보여준다.
<파묘>에 이르러 연출력도 좋아졌다. 미장센이 특히 좋다. 한국적 색채도 강해졌다. 마치 리듬을 타듯이 경쾌한 인서트숏도 인상적이다.
<곡성>을 오마주한 장면도 있다. 하지만 <파묘>는 <곡성>과 다르고, 장재현은 나홍진과 다르다. 나홍진이 '이거 봐라? 여기 이상한 거 나온다? 어때, 무섭지. 막 귀신같지' 같은 느낌이라면, 장재현은 '얘가 우리 귀신인데 이렇게 생겼고요, 고향은 어디고요' 같은 느낌이다. 똑같이 초자연적 현상을 다룸에도 나홍진이 관객을 향해 게임을 걸며 스릴을 자아낸다면, 장재현은 게임하지 않는다. 나홍진은 오컬트적 세계의 입구에서 믿음과 의심을 다루지만, 장재현은 그 세계 깊숙이에 발은 담근 상태에서 얘기를 시작한다. 그에게 오컬트는 의심을 넘어 여지없이 존재하는 세계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컬트 덕후 장재현의 패기는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엿보인다. 그의 영화에는 생각보다 스타가 많이 나온다. <검은 사제들>에는 강동원과 김윤식. <사바하>에는 이정재와 박정민. <파묘>에는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까지. 하지만 장재현은 이들의 스타성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 배우는 오컬트를 구현할 하나의 장기말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무신경함이 오히려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은 신념이 곧은 파리한 얼굴의 신부를 연기하며, 배우로서 새로운 면모를 선보였다. <파묘>에서 김고은은 어딘가 얄밉고 속물적이지만, 영리하고 믿음직스러우며 프로페셔널한 무당을 연기한다. 그녀는 이 역할로 자신의 연기를 한 단계 발전시킨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주 'PD저널'에 기고하는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선명한 색을 띤 장르 감독의 탄생이 반갑다. 온통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는 세상에서,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촌스러운 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