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글을 펜으로 쓴다했나. 글은 자부심으로 쓴다.
대단한 필자라서가 아니다. 이 길을 믿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때로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뇌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작가에게도 메타인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자부심이 전혀 없이 텍스트만 쓴다면 AI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글이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몸으로 살아온 시간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맘에 안 들 수는 있어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체취와 피가 묻은 글을 써야 한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쓴 글들이 누군가에게 가 닿았던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이 자부심을 만든다.
그래서 글이 안 써질 때에는 다시 떠올린다. 사랑했던 순간들을. 처음 등단을 하게 되고, 무언가를 써서 반응을 얻고, 내 스스로 만족했던 순간들을. 마감과 고료 없이 펜질이 굴러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힘든 마지막 순간에 다시 기어나와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