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의 '악의 평범성의 평범성'
여기 평화로운 풍경이 그려진 유화가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죠.
2013년 10월, 누군가가 이 풍경화 한 폭을 뉴욕의 중고상점에서 50달러에 사갑니다.
그리고선, 자신이 직접 이 그림 위에 벤치와 한 명의 군인을 그려 넣고, 2주 후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다시 그 중고상점에 기부합니다.
악의 평범성의 평범성
(The banality of the banality of evil)
이 그림은 경매를 통해 무려 615,000달러(약 6억 3천만원)에 판매됐습니다.
평범한 풍경화에 나치 군인을 그려 넣은 남자는 바로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였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도 규칙과 무리를 따를 때,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치즘은 이런 아이디어의 극단적 상징이었죠.
수십만의 유태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한 잔혹한 집행인이었던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수백만 명의 아이와 남녀를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아렌트는 살인자의 가증스러운 답변을 두고 그것은 단지 '무지에서 나온 것일 뿐'이라고 차분하게 결론지었다. 그녀의 이 보고서는 '악마적 행위를 한 사람도 의외로 평범할 수 있다.'라는 그야말로 평범한 진리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105p.
뱅크시는 나치 군복을 입고 있는 평범한 사람을, 평범한 화폭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 작품의 구조 자체가 평범합니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그저 '풍경을 바라보는 한 명의 남자' 정도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남자가 입고있는 군복이 독일군의 것이며, 팔에는 나치의 완장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는 것이죠.
소름끼칠 만큼 강렬한 표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평범합니다. 정말 무서운 작품이죠.
중고상점에 다시 돌아온 저 그림을 보고, 가장 처음으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 그림이 뱅크시의 작품이라는 게 뉴욕시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중고상점에 전시 된 '악의 평범성의 평범성'은 많은 관람객이 모일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결국엔 경매를 통해 판매된 것입니다.
뱅크시는 본인을 '아트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남의 작품에 맘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관에 몰래 자신의 그림을 걸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거리의 혁명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경찰들도 뱅크시의 체포를 어려워 할 정도로요.
다음에는 뱅크시의 더 많은 작품을 브런치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