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호킨스는 정말 대단한 배우다.
<내 사랑>을 봤다. 나는 이 영화의 예고편도 보지 못했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다. 제목부터 살짝 진부함이 느껴졌다. "내 사랑 이라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런 제목을.." 이라고 생각하며 영화관에 들어갔다.
근데 인생 영화가 됐다. 구성과 스토리, 색감, 배우들의 연기, OST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부족함이 없어서 완벽한 게 아니다. 더 뺄 게 없어서 완벽했다.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지만, 나는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던 장면 세 가지를 분석해보려 한다.
생선과 장작을 파는 거칠고 가난한 남자 에버렛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 모드. 에버렛은 첫날부터 모드를 윽박지르고 혼을 낸다. 불안불안했다. 저렇게 나쁜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 모드가 걱정됐다.
결국 일이 터진다. 에버렛이 모드의 뺨을 때리며 집으로 들어가라 소리친다. 그저 에버렛의 동료에게 친근함을 보인 것뿐인데 말이다. 뺨을 맞은 모드는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이 장면은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했다. (샐리 호킨스의 연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뺨을 맞은 모드가 그대로 집에서 나가버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모드는 식탁에 앉아 민트색 물감으로 나무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뺨을 때린 남자의 집에 그림을 그리는 여자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 초반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드의 오빠가 집을 팔았다고 통보하고 떠나버리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오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모드. 숙모는 모드에게 이제 그만하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때, 모드는 숙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림 좀 그리고 들어갈게요.
모드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면을 지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병, 가족들의 핍박, 에버렛의 폭언과 폭력으로부터 아름다운 내면을 지키기 위한 방법.
그래서 모드는 뺨을 맞고도 그림을 그렸다. 영화를 본 뒤에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슬픈 장면이다.
영화에서 모드가 가장 많이 그린 것은 무엇일까? 바로 '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 실제 꽃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모드와 에버렛이 살고 있는 오두막 근처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져 있었나?
아니다. 온갖 잡초들과 갈대밭만 있었다. 거기에 에버렛이 모아 온 부서진 장작들과 쇳덩어리들만 쌓여 있다. 정말 삭막하다. 계절이 바뀌면 눈만 쌓여 있었다.
모드가 무엇을 그렸는지 잘 살펴보면, 튤립 모양의 꽃, 꽃잎이 4개 달린 꽃, 나비, 새, 고양이 정도로 볼 수 있다. 모드가 그리는 사물의 공통점은 모두 정형화된 형태를 가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는 건데, 이는 모드가 무엇인가를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오직 상상력으로 꽃과 나비, 새를 그리는 것이다. 나비 또한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날아다닌 적이 없다. 나비의 날개가 어떤 무늬를 가졌는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드는 더욱 창의적인 색깔로 나비의 날개를 그릴 수 있었다.
사만다가 처음으로 오두막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모드는 사만다의 빨간 구두를 보자마자 정말 예쁘다며 시선을 떼지 못한다. 살면서 그렇게 비비드 한 색깔을 가진 물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드는 사만다의 빨간 구두, 푸른 청바지, 살구색 자동차에서 영감을 받는다. 사만다가 차를 타고 떠날 때, 모드는 사만다의 차와 똑같은 색깔의 물감을 꺼내 창문에 꽃을 그린다.
사만다가 두 번째로 오두막을 방문했을 때, 남편 에버렛이 팔려고 했던 그림이 있다.
어떤 소녀와 고양이가 그려진 그림인데, 모드는 처음으로 그림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안절부절하며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미완성인데.." 라는 말을 반복한다. 왜 그랬을까?
그림의 소녀가 바로 자신의 딸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잠깐 나오는 그 그림을 자세히 봤다면 눈치채셨을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소녀는 예쁜 핑크색 옷을 입고 있는데,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다.
모드는 딸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상력으로 얼굴을 그릴 수도 없다.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 그림은 애초에 완성할 수가 없는 그림인 것이고, '미완성'인 이유다. 모드가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미완성'에 머물렀을 그림이다. 모드는 딸을 잃은 아픔 때문에 그 그림을 팔 수가 없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표현하는 아주 영리한 장면이다.
모드는 파리가 들어와서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된다며,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자고 한다. 에버렛은 그게 왜 필요하냐며 툴툴대지만, 다음 날 말 그대로 '지나가는 길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해준다. 그리고 다시 사라진다.
모드는 그런 남편의 행동을 슬쩍 보고 미소 짓는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문을 한 번 열었다가 닫아본다.
스크린도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문에 딱 알맞다.
감독은 대사 한 줄 없이, 모드가 느끼는 행복을 관객에게까지 전달한다. 문이 여닫히는 삐걱거리는 소리로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런 영화가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