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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May 06. 2018

주차장 요금정산 아저씨는 어디로 가셨을까

드디어 체감한 기계화, 자동화의 맛은.. 씁쓸했다

난 사람이 없는 심야 시간(오후 10시 이후~)에 여유롭게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신림 포도몰 건물에 있는 롯데시네마를 자주 간다. 포도몰 지하 주차장 요금정산소에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일하고 계신데, 내가 주로 방문하는 심야 시간에는 항상 어떤 아저씨가 앉아 계신다. 창문을 내리고 영화 티켓만 보여드리면, 센스 있고 빠르게 계산해주셔서 기분 좋게 건물을 빠져나오곤 했다.


어제 친구와 오랜만에 신림 롯데시네마에서 어벤저스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영화 티켓을 보여드리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려는데, 엥? 요금정산소가 사라졌다.


어느새 여기도 '무인 요금정산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을 내려 잠깐 대화를 나누던 아저씨가 앉아 있던 자리엔 커다란 알림판이 달려 있었다.


43더-70XX
주차요금: 9,000원


순간 벙쪘다. 뭐지? 돈을 내야 하나? 아닌데 영화 보면 3시간 무료인데..?


우선 비상등을 켜고 급하게 후진했다. 뒤에 차들이 밀리기 전에 빠져나와 다시 주차했다. '영화를 봤다는 사실'을 기계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사전 정산 키오스크에 차 번호를 입력하니 영수증 바코드를 인식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앗, 근데 영화 티켓은 못 한단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롯데시네마가 위치한 10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매표소 구석에 '차량 주차권 사전 등록' 키오스크가 있었다. 키오스크에 차 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지하 4층까지 내려왔다.


밀려있는 차들, 어떤 차는 후진하다가 뒷차와 충돌을 하기도 했다.


내려오니 어느새 차들이 밀려있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가려다가 무인 요금정산기를 맞닥뜨리고 당황한 사람들 이리라. 차에서 내려 기계를 탐색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계에 달린 경비 버튼(?)을 눌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저 방금 영화 보고 나왔다니깐요! 빨리 열어주세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어떤 차는 정산기 앞에서 후진을 하다가 뒤차와 가볍게 부딪히기도 했다. 아수라장이었다. 그놈의 자동화, 무인화가 뭐길래 이런 비효율을 초래한단 말인가.


정산소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자동화 때문에 그분들은 일자리를 잃으셨다. 키오스크 2대 놓는 비용이 장기적으로는 인건비보다 더 저렴해서 일까.


난 모든 걸 자동화시키려 하는 시대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기존에 없던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재취업이 힘든 중장년층의 일자리를 뺏어가기 때문이다.


다시 차를 몰아 무인 정산기 앞으로 가니, 자동으로 게이트가 열렸다. 창문을 내리고 티켓을 보여줘야 하는 과정은 단축됐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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