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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Mar 27. 2018

<셰이프 오브 워터> 3가지 관람 포인트

단순한 기성품이 아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1. 물은 담은 만큼 커진다. 사랑도 그렇다.


Shape of Water. 물은 모양이 없다. 그 물을 담는 물질의 형태를 따라갈 뿐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그'(라고 칭하겠다)와 엘라이자의 사랑이 물에 비유된다. 스토리가 진행되며 둘의 사랑도 커져가고, 둘이 몸담는 물의 크기도 넓어져간다.


# 욕조의 크기

'그'는 남미에서 붙잡혀와서 연구소에 수감된다.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에게 고문받는 '그'에게 연민을 느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그'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엘라이자는 '그'를 욕조로 옮긴다. 급하게 소금을 쏟아부으며 손을 욕조에 넣어 휘젓는다. 이 순간 사랑의 크기는 욕조에 담긴 물만큼이다.



# 욕실의 크기

며칠 후, 엘라이자는 '그'와 관계를 갖기 위해 욕실로 향한다. 수건으로 문 틈새를 막고 수도를 완전히 연다. 콸콸콸 흘러나와 바닥부터 차오르는 물. 쏟아지는 사랑이다.



물은 욕실을 가득 채운다. 엘라이자와 '그'의 사랑의 크기는 이제 욕실만큼이다. 새어 나온 물은 아래층 극장으로도 떨어진다. 옆 집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가 엘라이자의 방으로 들어와 욕실 문을 벌컥 연다.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그 속엔 물속에서 다시 태어난 듯한 엘라이자가 '그'를 안고 있다.


"Overflow of Love"


# 바다의 크기

'그'는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몸은 약해지고 비늘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비 오는 창밖을 보며 고향인 아마존 강을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폭우가 오는 날, '그'와 엘라이자는 바다와 연결되는 부두로 뛰어든다. 수면 아래에서 키스를 하며 엘라이자는 다시 생명을 부여받는다. 이 순간, 둘의 사랑의 크기는 바다만큼 넓고 무한하다.



# 2. 스트릭랜드의 잘린 약지는 '아내와 가정'을, 새끼손가락은 보스와의 '약속과 신뢰'를 의미한다.


스트릭랜드는 '그'에게 손을 물려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잘린다. 엘라이자가 피를 닦아내기 위해 청소를 하다 두 손가락과 '결혼반지'를 발견해서 스트릭랜드에게 돌려준다. 스트릭랜드는 봉합 수술을 받지만 어째 잘 된 것 같지가 않다.



스트릭랜드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근사한 집, 아름다운 아내, 의젓한 딸과 아들, 청록색 캐딜락까지.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아내와 관계를 가지며 입을 강제로 막고 말을 못 하게 한다. 이는 엘라이자를 향한 스트릭랜드의 삐뚤어진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내의 입을 막은 손에서는 피가 줄줄 샌다. 제대로 끼워진 것 같지만 단절되고 있는 부부관계를 상징한다. ("여보, 손에서 피 나와.")



새끼손가락은 스트릭랜드의 보스인 호이트 장군과의 '약속과 신뢰'를 상징한다. 스트릭랜드는 부산 전투 때부터 이어져 온 믿음을 언급하며 실수('그'가 탈출한 것)를 바로잡고자 한다.


장군이 빨리 찾으라고 닦달하자 화장실로 뛰어가 떨리는 손으로 약을 먹고,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에서 불쌍한 우리 직장인들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기도 했다..ㅠㅠ


비 오는 부두에서 '그'에게 총을 두 발 쏘고서 "난 반드시 약속을 지키지"라고 말하는 장면도 업무에 있어 완벽하고자 하는 스트릭랜드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손가락이 제 자리에 붙지 못하고 썩어가듯이, 스트릭랜드는 '그'를 되찾아오지 못하고 가정도 지키지 못한다.



# 3. 탈모는 치유해도, 엘라이자가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의 엄청난 치유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탈모 치유 장면.


자라나라 머리머리


치유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비범한 존재임을, 단순한 생선맨이 아니라 아마존 강의 신임을 확신시키는 장치다. 상처 재생 능력에 탈모까지 치유하는 장면을 곁들임으로써, '그'의 비범성은 물론 유머까지 잡은 델 토로 감독의 센스, 좋았다.


근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탈모까지 챙겨주는데, 사랑하는 인간 여성인 엘라이자의 성대는 왜 치유해주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봤다. '그'의 치유 능력은 대상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능력이 아닐까?

팔은 상처 나기 전 상태로, 머리는 빠지기 전 건강한 상태로. 그렇다면, 엘라이자는 원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다른 종족인가?


영화 설정을 보면, 엘라이자는 무려 '물속에서' 발견된 고아다. 목에 난 아가미 자국의 흉터는 발견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사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뻔한 설정이긴 하다. 엘라이자는 애초에 '그'와 같은 '인어'였다는 것.


그렇다면, 엘라이자가 유독 '그'에게 느끼는 유대감이 강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욕실에서 '그'와 관계를 맺는 행위도,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 하였을 일이지만, 엘라이자는 같은 종족이라 큰 거부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줘요."


'그'를 구출하기 전에, 엘라이자는 자일스를 설득하며 '그'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의 시선으로 엘라이자를 본다면, 그녀가 말을 못 하는 것보다, 그녀의 정체성(아가미)을 숨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더 불완전하게 보였을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물속에서 엘라이자의 아가미를 되찾아준 장면은 의미가 있다.



수면 아래에서 '그는' 엘라이자에게 키스하며 치유력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아가미가 펼쳐지며 숨을 쉬기 시작하는 엘라이자. 엘라이자에게 '원래 상태'란,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아가미로 숨 쉬는 인어의 모습이다.




이제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둘은 함께 아마존 강으로 돌아갈까? 엘라이자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게 될까? ... <셰이프 오브 워터>는 바다처럼 열린 결말로 끝을 내리지만,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에 치유력을 선물한다.


박평식 평론가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아름답고 괴이한 기성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성품은 언제나 올바른 주제를 하나씩 던져준다. "사랑을 통해 우린 각자의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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