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이제는 정말로 “가볍게”옷을 입어도 되는 날씨다. 그리고 가볍게 입어도 어느샌가 땀을 한바까지는 흘리고 마는. 그러니까 정말로 여름이 온 것이다.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소리의 아버지가 집을 파는 바람에 소리는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소리의 아버지는 드디어 새로 결혼을 하신 것이다. 만나고 있던 그 애인과 말이다. 집을 판 돈으로 소리에게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주려고 하셨지만 소리는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금 우리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 소리의 아버지는 결혼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고 가족끼리 간단히 식사만 하셨다. 미국에 있는 소리의 오빠는 그 자리에 오지 않았고 소리 역시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결혼한 것이 싫은 것이냐고 물어보니 별로 상관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식사 자리엔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지 자기는 생선 요리를 싫어하는데 하필 그날 메뉴가 생선요리였다고 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고. 세상엔 종종 음식에 관한 취향이 가족의 결혼보다 중요해지기도 한다. 나는 가리는 음식이 딱히 없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파리에서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자그마한 공방을 소개하는 브로셔와 유리로 만들어진 예쁜 재떨이가 들어 있었다.

보낸 이의 이름과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희형이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드디어 공방을 차린 것이다.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고 또 수집하면서 멋진 공방을 꾸며내고 있을 희형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 아쉽게도 희형의 책은 잘 팔리진 않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리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 가람이의 무덤에 다녀왔다. 가람이 무덤을 가는 건 처음이었다.

가람이의 부모님은 여전히 예전 그 집에 살고 계셨고 내가 찾아갔을 때 가람이의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아마 어딘가 먼 바다 위에 계시겠구나 생각했다. 대신 처음 보는 남자가 가람이의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이 가정에도 많은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가람이의 어머니는 다행히도 한 번 본 나를 기억해 주셨고 가람이가 묻혀있는 곳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무덤은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가람이의 무덤 위에 안개꽃과 라디오 해드의 앨범을 놓고 왔다.

소리는 어떤 친구였는지 물었다.

나는 나의 유일했던 친구였다고 말했다.

슬프지 않냐고 물었고, 많이 슬펐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니 영영 이별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도 난 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연락이 왔다.

시골의 작은 요양원에서 편하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꼭 아들에게는 모든 장례가 끝나고 연락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

나는 아버지가 계시던 요양원에 찾아갔다. 아버지는 내 앞으로 약간의 재산과 한 통의 편지를 남기셨다. 편지엔 “미안했다”라는 말만 크고 진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몇 가지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고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몇 가지 유품을 건네받았다. 거기엔 처음 보는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나와 무척 닮은 여자. 더 이상 아무도 말해줄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아름다운 여인. 아버지께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모습을 아버지가 돌아가고 나신 후에야 나는 볼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지갑에 넣은 채 요양원을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소리와 함께 한강을 걸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니 그래도 조금은 선선해져 걸을만했다.

우리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양화대교에서 성산대교 방향으로 걸었다. 손을 잡고.

“예전에 네가 말했었잖아.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노래를 만든다고.” 내가 소리에게 물었다.

“응.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조리 마음속에 담아 뒀다가 가사를 쓰고 거기에 멜로디를 입혀요. 그런데 갑자기 왜? 갑자기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

“응. 어쩌면.”

“어떤 이야기인데?”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마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밝은 이야기야? 슬픈 이야기야?”

“아마 밝은 이야기일 거야.”


멀리 성산대교에는 붉은빛이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때론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는 즐거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해피엔딩을 갈망하며 그 이야기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어떻게든 걷고 있다. 멈추지 않고.

그것이면 된다.

세상은 행복을 향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묵묵히 걷는 자를 결코 멈춰 세울 수 없으니까.

그리고 걷다 보면 어느샌가 삶은 정말로 해피 엔딩이 되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떠있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른 살의 나는 유난히 더웠던 봄을 그렇게 지나 보냈고, 역시나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삶이 괜찮았다. 좀 더 열심히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살다 보면 인생은 해피 엔딩이 될 테니까.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