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Oct 09. 2016

산소가 부족하다

별 것 없는 이야기

나에겐 알 수 없는 강박이 하나 있다.

이건 나조차 왜 그런지 여전히 잘 모르기 때문에 남들을 납득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굳이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은 비밀스럽게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하니까.

누군가는 벽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기어 내려오고 있는 바퀴벌레를 못 견뎌하기도 하고(이상하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는 바퀴벌레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강변북로의 1차선에서는 절대 차를 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뜨거운 가지 요리를 먹느니 차라리 양파 즙을 한 시간 동안 입안에 머금고 있겠어,라고 선포하는(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사람도 내 주변엔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것들 때문에 몹시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대체 당신은 왜 그럽니까?”,라고 묻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므로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나의 강박이고 할 수 있는 건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은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주말에 붐비는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나에겐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게 힘들다고 해서 먼 길을 돌고 돌아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백화점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한 명 한 명 탈수록 내 손엔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머리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이내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 같아 숨 쉬는 것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버텨내야 하므로 눈을 감고 계속해서 초원의 양을 세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난 말 그대로 허겁지겁 탈출을 한다. 종종 그 공간을 견디지 못해 내 목적지가 아닌 다른 층에서 일찍 내린 적도 있으니 이건 나름 큰 문제이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심하게 과호흡을 해서 다른 사람의 산소마저 내가 빼앗아 간다거나 뭐 그런 것.

덕분에 사람들은 날 종종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아마 한국이 총기 소지가 자유롭고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는(미국처럼 말이다) 나라였다면 난 분명 위험인물로 오인받았을 수도 있다. 그것도 참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항상 번듯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내가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최선을 다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버린다면 그때부턴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만약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힘겨워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신다면 그냥 그러려니 이해해주세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요.

비슷한 이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넥타이도 거의 하지 않는다. 셔츠의 제일 위의 단추를 잠그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넥타이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넥타이를 메야하는 모임이 있다면 되도록 참석하지 않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한다면 공식적인 모임이 끝난 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넥타이를 풀어버린다. 그리고 크게 한 숨 내쉰다. “이제 좀 살만하군.” 하면서 말이다.


감춰야 하는 일과 힘겨운 일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나이를 먹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침에 면도를 하기 위에 따듯한 물에 면도기를 담가놓는 것. 

입기 불편한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야 하는 것.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는 것. 때론 슬플 수조차 없는 것.

그리고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버텨야 하는 것.

백화점의 안내센터에서 유모차만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산소마스크도 대여를 해줬으면 한다.

백화점 관계자 여러분 한 번 고려해주세요. 그래도 전 꽤나 성실하고 꾸준한 고객이니까요.


*창문이 없는 백화점의 공기는 정말 깨끗할까요? 가끔 그런 의문이 드네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