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필요할 거야
무심코 열어본 냉장고 안에 낯선 반찬통 하나가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 생각한다.
'아, 너는 내 자취집 현관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
일주일 전에 너에게 날카롭게 내뱉었던 내 이별 통보보다 너의 반찬통이 몰래 먼저 와 있었나 보다.
열어보니 깻잎 반찬이다.
마침 끓였던 라면에 함께 먹어야겠다 싶어 반찬통을 꺼냈다.
하나 먹어보려 젓가락질을 해보지만 서로 단단히 엉겨있던 깻잎을 떼어내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너와 함께 먹을 땐 참 쉬웠었는데...'
깻잎을 먹느라 엄지와 검지에 뭍은 양념을 입으로 훔쳐내며 결국 네 생각을 하고 말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나지 않았던 너였는데 고작 깻잎 하나 때문에.
혼자는 먹기 힘든 반찬이다. 혼자일 때 더욱 슬퍼지는 반찬이다.
그래서 오늘, 너 없는 나에게 깻잎은 무척이나 슬펐다.
도둑처럼 급하게 설거지를 한다.
콸콸 틀어놓은 물소리에 네 생각 몇 개를 묻으려 노력해본다.
오늘 깻잎이 말했다. 너는 내가 필요할 거야,라고.
* 매거진 <사물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새로울 시각을 담아 작성된 픽션입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