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세계"의 연결고리
소설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품들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작가가 한 편의 소설을 펴내기 위해 많은 시간들을 책상 위에서 지켜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세계관을 글이라는 현실적인 도구로 집약해 표현해내야 하는 작업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창작이라는 것은 그것을 규정하고 있는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울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때론 그 모호함 때문에 막막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뒤 탄생한 작품은 어쩌면 작가에게 있어서는 바로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소개할 "무라카미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역시 하루키 본인에게 있어선 굉장히 소중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는 지면을 통해 직접 <1973년의 핀볼>에 대한 애정도를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마찬가지로 아직 습작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자신은 이 소설(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는 적잖은 애착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의 생각을 한 대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테이블에서 쓴 마지막 장편소설이 되었다. 그 후 나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어, 풀타임 전업 작가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에 내 나름으로 깊은 애착을 느낀다.
하루키의 말처럼 <1973년의 핀볼>은 하루키가 일을 하면서(당시에 그는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 부엌의 테이블 위에서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 후로 그는 풀타임 전업작가의 세계로 들어섰으니까.
작품의 순서로만 치자면 데뷔작이었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다음으로 써낸 두 번째 책이었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양을 쫒는 모험>과 함께 하루키의 초기 세 작품 중 하나이다. 또 그의 말처럼 아직 습작의 영역을 벗어나진 못한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표현대로면 말이다. 이정도 뛰어난 작품이 습작이라는 그의 평가에 필자는 동의하지는 못하겠다.(솔직히 부럽다.)
<1973년의 핀볼>에 하루키가 애착을 갖고 있는 것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를 했고, 그 작품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타기도 했지만 그를 전업 작가의 세계로 이끌었던 작품은 바로 <1973년의 핀볼>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첫 데뷔 때만 해도 하루키는 '내가 재즈바를 정리하고 전업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남아 있었을 테고, <1973년의 핀볼>을 펴내고 난 후에야 '이제는 재즈바를 정리하고 전업작가로 살아가야겠군.'이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일지도.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굉장히 큰 변화이므로, 그 변화를 이끌어냈던 이 작품은 하루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실 하루키는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한국,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책을 팔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작품이 아시아를 벗아나 머나먼 유럽에서조차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하루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세계관과 그것을 간결한 글로 적합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문체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그러했지만 이런 하루키의 매력에 한 번 빠지게 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모든 것엔 반드시 시작점이 있다.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매력도 반드시 그 시작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하루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학적 매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에서 언급한 초기 세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중에서도 <1973년의 핀볼>을 말이다.
독자들마다 책을 읽고 느끼는 바는 분명 다를 것이다.
같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받은 느낌은 천차만별일 것이고, 또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작품을 읽고 난 후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 책을 읽었느냐에서부터 개인의 취향과 정서의 방향까지. 그 모든 것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므로.
필자가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이다.)
하루키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핵심 주제는 바로 "상실"이다.
그것은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하루키의 젊은 시절의 경험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을 해본다.
하루키 본인의 대학생 시절, 제대로 된 학생운동에서 그는 살짝 비켜있었다. 사실 그에겐 시대적 사명이라고 여겨졌던 공동체의 슬로건보다는 자신의 정서적 공백과 사랑의 실패 등의 문제가 더욱 컸었다. 시대를 휩쓸고 있던 커다란 이념 속에 침몰되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열정을 바치기보다는 그는 철저하게 자신 내면의 상태에 집중했다.
하루키의 젊은 시절의 고민은 결국 "상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로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은 항상 커다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1973년의 핀볼>의 주인공 "나"역시 연인이었던 "나오코"의 죽음으로 상실을 겪는다. 그리고 이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항상 무언가를 "상실"한 상태로 등장한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이 단순히 "상실"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껴안고 있는 "상실"은 일종의 상태이다. 어쩔 수 없의,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다. <1973년의 핀볼>의 주인공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소설의 시작가 함께 "나"에게 "나오코"의 상실은 주어진 것이다. 기승전결의 "결"로서의 상실이 아니라, "기"부터 상실이 시작된다.
만약 하루키가 풀어낸 이야기들이 여기서 끝이 난다면 약간은 허무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소설에서는 꾸준히 누군가가 무언가를 찾아간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소설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주인공은 "상실"을 가지고 등장을 하고, 그것을 극복하게 위해서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그게 무엇인가에 대해선 상당히 난해하긴 하다.
그의 첫 소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강할 뿐 무엇을 잃었고, 어떤 것을 찾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은 약하다. 하지만 <1973년의 핀볼>에서는 눈이 보이는 상실과 찾아야 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있다. 상실은 연인이었던 나오코의 죽음이고, 찾아야 할 것은 핀볼 기계이다.
물론 주인공이 찾아가는 핀볼 기계는 하나의 상징이다.
중요한 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고, 찾은 뒤 그것이 어떡하든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국내에서 하루키 마니아를 만들어냈던 책은 <상실의 시대> 일 것이다. 하루키의 유명세(?)는 <상실의 시대> 전 후로 나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처음 접했던 하루키의 책도 바로 <상실의 시대>였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자신만의 상실을 껴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이 다시 옆의 누군가의 상실을 만들어 낸다.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했습니다, 의 결론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하루키는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것을 소설의 주된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일본에서 <상실의 시대>가 발표되고 인기를 끌면서, 슬프게도 "베르테르 효과"로 자살률이 조금은 올라갔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하루키의 소설과 죽음(특히 자살)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1973년의 핀볼>에서도 죽음은 등장한다.
나오코를 사랑했던 것도, 그리고 그녀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결국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_32p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_146p
왜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유독 죽음이 많이 등장하는 걸까?
필자는 하루키의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이다. 하루키는 어쩌면 사람을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실을 벗어날 수 없으며, 상실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그래 차라리라고 말하겠다, 차라리 상실의 삶을 껴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악인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온전히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자,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1973년의 핀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은 하루키 스스로도 밝혔듯이 장편소설이라기보다는 중편 소설에 가깝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전 그의 초기 작품답게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탄탄한 서사보다는 오히려 순간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해나가는 하루키의 짧고 간결한 문체가 더욱더 돋보이는 작품이다.
<1973년의 핀볼>을 읽을 때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할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하루키의 여러 소설에서 "나오코"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이유는 그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에서 그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1973년의 핀볼>의 나오코와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를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미지상 동일인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힘든 묘하게 분위기가 비슷한 인물이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약해 보이지만 결단력 있는 말투와 행동까지.
하루키 소설의 팬이라면 적어도 나오코의 등장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울 수 있다.
하루키의 팬인 필자로서도 혹시나 하루키 본인의 첫사랑 이름이 나오코 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소설 <1973년의 핀볼>에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몇 가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나오코와 핀볼이다.
주인공 "나"는 예전 연인이었던 "나오코"의 죽음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놓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죽음 후 자신이 빠졌었던 "핀볼 게임"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찾으면 마치 나오코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큰 그림에서 이 소설은 바로 주인공이 핀볼 기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쫒아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주인공이 찾고 있는 핀볼은 죽음으로 인해 없어져버린 나오코의 대체물인 것이다. 그리고 종반 부분엔 주인공이 찾고 있는 것이 핀볼인지 나오코 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그래서 "나오코=핀볼"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둘째는 "나"와 "쥐"이다.
사실 주인공 "나"와 "쥐"는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물론 "나오코"와 마찬가지로 "나"와 "쥐"가 이전의 작품과 동일 인물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묘하게 그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하다. 게다가 쥐가 자주 가던 바의 주인인 "제이"까지. 물론 반복해서 이름이 같은 인물을 연차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으로 채택한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하루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셋째는 "만남"과 "상실"이다.
소설에서는 조금은 기묘해 보이는 쌍둥이 자매가 등장한다. 이 자매들 주인공이 나오코를 상실한 이후 아무런 이유도 설명되지 않은 채 등장되어, 주인공과 동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셋 사이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어떠한 대화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옆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마치 항상 있었던 공기처럼 여기며 생활해나간다. 나오코와의 "상실"이 쌍둥이 자매들과의 "만남"을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이 핀볼 기계를 찾아낸 후 쌍둥이 자매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다. 주인공의 집에는 쌍둥이 자매의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는다. 핀볼 기계를 찾음으로써 주인공은 상실했던 나오코와의 "만남"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만남은 쌍둥이 자매의 "상실"을 불러온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독자에게 그 모든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필자가 발견한 위의 세 가지 관계들도 어디까지나 필자가 친절하지 않는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꾼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공백을 메꿔가는 것도 소설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나오코를 사랑했던 것도, 그리고 그녀가 이미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결국은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_32p
누구나 한 아름씩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졌고, 우리는 정신없이 그것들을 그러모아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했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뭔가 다른 것과 착각했던 모양이다._75p
그 시절은 나에게도 고독한 계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벗을 때마다 온몸의 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내 내부에 존재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 나를 어딘가 다른 세계로 끌고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_77p
"나는 45년 동안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이런 거지. 인간은 어떤 것에서든지 노력만 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야. 아무리 흔해빠지고 평범한 것에서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다고. 그 어떤 이발사에게도 철학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지."_117-118p
<1973년의 핀볼>은 독백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일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그리고 역시나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간결하며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루키 소설의 커다란 뿌리가 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의 소설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상실과 고독의 시초가 이 소설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어쩌면 "세계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인 하루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조금은 추측해볼 수 있는 자전적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라는 커다란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서사보다는 하루키만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문체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