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질투했던 사나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스포일러가 있다 하더라도 별로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토록 기다렸던 영화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히스 레저"가 도대체 누군데?라는 반문을 할 수 도 있을 영화가 드디어!!(필자는 전자 쪽이니까요) 개봉을 했다.
어쩌면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상 자서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우리에겐 미국 남성성의 상징인 카우보이를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각도에서 풀어낸 <브로크백 마운틴>의 게이 카우보이, 세상의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던, 지금까지 없었던 철학적 악당을 연기해내 낸 <배트맨_다크 나이트>의 조커, 하지만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그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배우 "히스 레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사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태생적으로 소재적, 서사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영화 장르이다.
특히 <아이 앰 히스 레저>처럼 인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더더욱 말이다.
우선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인물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고, 그 인지도에 적합한 삶의 방향과 두께를 보여줬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더라도 우리는 그런 대중적 인지도와 그에 걸맞은 삶의 두께를 보여줬던 인물 자체를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요즘의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물질 이상의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아니, 적어도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비록 살아내고 있는 현실은 반대라 할지라도.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루어낸 물질의 양의 합이 큰 사람들이다. 그것이 무게를 두고 있는 가치와는 반대방향의 삶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물질 앞에 우리는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정한 자본의 논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물질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것을 기대하고, 찾아내며, 그런 인물들은 존경한다.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의 주인공인 "히스 레저"는 그가 거둔 배우로서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물질을 쌓아 올리긴 했지만 그것을 좇았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히스가 스크린 위에서 그의 연기와 살아냈던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방향과 색깔은 타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히스의 주변 인물들은 그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더 아름다웠고 행복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히스 레저"의 삶이 영화로 제작될 만큼이었는지에 대한 여러 평가와 판단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 개인적으로는 충분하고 충분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닌 서사적 한계를 생각해 보자.
영화로 제작될 정도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면 대중성이라는 장점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인 서사적인 면에선 큰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스토리상 "반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스크린 앞의 관객들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예측해가면서 영화를 보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건 스토리 자체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도 이 부분에선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단 그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의 인터뷰만 등장한다. 어릴 적 친구, 가족, 나름 좋은 방법(?)으로 헤어졌던 옛 연인(나오미 와츠의 용기와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영화는 어쩌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히스의 삶에서 부정적인 관계를 맺은 인물(절대로 그의 전 부인인 미셸 윌리엄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정말로요.)의 인터뷰는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해 나갔던 현자의 삶이 아니라면 분명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다 지녔을 텐데.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쉽긴 하다.
또, 히스가 굉장히 유명하고 성공한 배우이기 때문에 그의 삶에는 일반 대중이 모르는 반전이 없다는 것이다. 대게 유명한 배우들의 일상적인 삶 조차 일반 대중에겐 노출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100% "히스 레저" 본인의 역할이었다.
그는 촬영 현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항상 카메라를 손에 놓지 않았었다. 자신의 모든 순간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 파인더 안에 담았다. 사진뿐 아니라 영상까지. 거기에 그 순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했던 내레이션까지.
히스의 노력과 그의 예술적인 감각이 담긴 이 모든 기록들이 모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결국, 이 영화의 탄생은 그의 강하고 집착적이고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했던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
"<몬스터 볼>에서의 절제된 히스의 연기를 믿고 그를 캐스팅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욕망을 절제하려는 자신과의 싸움과 자기혐오가 묻어나는 연기를 끌어냈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에니스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본을 보면 주인공들 중에 대사가 가장 많답니다. 많은 대사를 하면서 말이 없어 보이게 하는 연기야 말로 그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죠."_ <브로크백 마운틴_이안 감독>
"히스 레저(이하 히스)"는 1979년 4월 4일 호주의 서쪽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퍼스에서 태어났다.
엔지니어 아버지와 불어 선생님인 어머니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그와 누나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이다.
사실 필자도 "폭풍의 언덕"을 읽어봤지만 히스는 책의 주인공 "히스클리프"와는 성격 자체부터가 완벽하게 다르다. 물론 그의 부모님이 막 태어난 아이가 가지기 될 성격을 알 수는 없었겠지만.
히스는 어렸을 때부터 체스, 하키, 연기 등에 굉장히 많은 재능을 나타낸다. 그 모든 것을 적당히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꽤나 잘 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도 제대로 갖추기 힘든 재능을 여러 분야에서 두루 나타냈던 히스에게 학교라는 울타리는 어쩌면 너무 비좁았을지도 모르겠다.
17세가 된 히스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한다.(역시 호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제가 떠나기로 한 이유는 집이 싫어서가 아니었죠.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 사는 곳이 다 좋지만 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어요."_<히스 레저>
친한 친구와 무작정 호주의 시드니로 떠났던 히스는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드라마 <Roar>의 주인공 역할을 따낸다.
사실 히스는 일반적은 다른 배우들처럼 연기를 공부하거나 배운 적이 없었다. 스스로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것을 다시 보면서 더 나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연구하고 연구했던 것이다.
아마도 히스가 그저 재능만을 타고난 사람이었다면 스크린 위에서 그의 성숙되고 진한 연기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천재였지만 그저 재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순간순간 연구와 고민을 통해서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가는 "노력하는 천재"가 바로 히스였던 것이다.
히스의 천재성은 연기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난다.
그의 사진과 영상을 찍는 능력과 감각은 취미 수준을 넘어서 예술성을 담아냈다.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영상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서 그 깊이를 지녔던 것이다.
실제로 히스는 그의 친한 음악가인 "벤 하퍼"의 뮤직비디오와 자신의 친구, 그리고 신인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었다.
"천재"는 달콤한 존재이다. 우리는 그 대상에게 경외심과 호기심을 느끼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닿지 않기 때문에 절실하고, 좌절하지만 그래도 동경과 이상의 저편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동경과 이상이자 질투를 일으키는 재능과 그것을 넘치게 풀어냈던 그의 삶.
천재는 단명한다는 믿기 싫은 그 말 까지 짊어지고 떠나버렸던 히스에게 어쩌면 차고 넘치는 재능과 에너지는 축복이었을까, 라는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남자 배우들에게 카리스마 결정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목소리와 건장한 몸, 그리고 남자다움이죠. 그는 이 모든 것을 지녔어요."_<나오미 왓츠>
역시나 유명하고, 잘 생기고, 연기까지 잘했던 히스였으므로 많은 모델에서부터 배우까지 많은 여인들이 히스의 곁에 머물렀었다.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래도 비중이 있었던(필자의 관점에서) 히스의 연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히스의 공식적인 첫 번째(?) 연인은 히스의 데뷔작이었던 드라마 <Roar>에서 함께 연기를 했던 "리사 제인"이었다. 그녀는 히스보다 무려 18살이나 연상이었다. 그리고 히스를 미국으로 데려가 할리우드에 데뷔를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 긴 시간을 만난 건 아니었지만 히스의 연기 인생의 배경을 세계로 바꿔줬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녀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나오미 왓츠는 히스의 연인이자 꽤나 가까운 친구이다. 그녀의 무명시절부터 꽤나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배우가 될 때까지 둘의 관계는 이어졌다. 그리고 히스의 전 연인으로서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에 나와 인터뷰하는 장면만 봐도 그를 참 많이 사랑했고 그리워하고 있음을 할 수 있다.
헤어진 남자,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되어버린 남자. 그리고 이제는 이미 세상에 없는 남자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그녀의 애틋한 모습만 봐도 둘의 시간이 충분히 행복했음을 알 수 있다.
"부인 알마 역의 미셸 윌리엄스는 정말 훌륭한 배우입니다. 똑똑하고, 그 역에 딱 들어맞았죠. 하루는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찍는데, 밑에서 보기엔 별거 아니었지만 썰매에서 넘어지면서 미셸이 다쳐서 병원에 가야 했어요. 제작진들과 병원에 갔더니 히스가 미셸의 손을 꼭 잡고 있더군요. 우리는 히스가 그녀에게 빠진 걸 알게 됐고 둘 사이는 급진전했죠."_<이안 감독>
마지막으로 소개할 히스의 연인은 "미셸 윌리엄스"이다.
히스와 미셸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연기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이 실제 연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행복한 순간을 이루었었다. 히스와 미셸의 사이에선 사랑스러운 딸 "마틸다"도 태어났다. 히스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을 미셸이 만들어준 것이다. 히스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스는 아버지로의 삶에 굉장히 큰 만족을 느꼈었고 행복해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큰 성공으로 히스와 미셸은 둘 다 수상자 후보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히스는 상에는 큰 욕심이 없었고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미셸은 아니었다. 그녀는 상에도 큰 욕심을 냈으며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히스와는 다른 뱡향의 삶을 지향했었다.
결국 영화처럼 시작했던 둘의 사랑은 가치관의 차이로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딸인 "마틸다"의 양육권 문제를 두고 다툼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미셸은 엄청난 변호사들을 고용해 히스와 딸이 만나지 못하도록 했었고, 히스는 이 과정에서 많은 상처들을 겪게 된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히스는 이후 망가진 삶을 살게 되고 온 몸에는 문신과, 불면증으로 복용하는 약을 늘려 갔다고 한다.
"저는 스킵 역에 필립 시모어 호프만을 생각했는데 꽃미남인 히스가 관심 있어 한다는 얘길 듣고 이 역에 안 맞을 거라고 했어요. 그러자 히스가 절 찾아와서는 자신이 어떻게 이 역에 몰입할지를 설명하면서 뻐드렁니를 붙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가발을 쓰고, 이빨을 붙이면서 역에 완전히 올인했어요."_<독 타운의 제왕들_캐더린 하드윅 감독>
히스만큼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투영하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히스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이후 줄곧 작품 선택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었다.
그는 꽤 인기가 있고 많은 감독들이 함께 하고 싶은 배우였지만, 자신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의 신념이나 연기의 결과 맞지 않은 작품은 과감하게 거부하기도 했었다.
한 예로 영화 <스파이더 맨>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히스는 그건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덕분에 역은 "토비 맥과이어"에게 돌아갔고 3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나름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히스가 <스파이더 맨> 대신 선택했던 영화 <포 베더스>는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긴 했다.
히스를 그저 잘 생긴 배우에서 연기력을 갖춘 한 단계 성숙한 배우로 만들어줬던 영화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브로크백 마운틴> 일 것이다.
당시 미국의 상징인 남성, 그리고 그 남성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를 동성연애자(쉽게 말해서 게이)로 연출해 낸 "이안"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작품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절제되고 억압된 감정을 표정과 눈빛으로 풀어낸 히스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브로크백 마운틴>의 촬영 바로 일주일 전까지 히스는 영화 <독 타운의 제왕들>을 촬영했었는데 여기서 그가 연기한 "스킵"은 게이 카우보이인 "에니스"와는 정 반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흔히 배우들은 그가 맡은 캐릭터에서 몰입하는데도, 또 빠져나오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들 한다. 하지만 히스는 이 두 과정을 고작 일주일 만에 이루어낸 것이었다. 배우로서의 그의 집중력과 작품을 대하는 진지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 능력까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조커 역을 하기 위해 런던의 호텔방에서 6주 동안 나가지 않고 조커 일기를 쓰면서 미친 사람을 연구했어요. 사이코의 자세와 몸싲, 목소리와 숨소리까지 완전히 파악해 나갔죠."_<히스 레저>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배트맨_다크 나이트>는 그 해 영화계를 휩쓸었던 대표작이었고, 조커 역을 맡았던 히스에게도 인생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히스는 작품에서 조커의 역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연기해 냈다. 얼마나 완벽했느냐 하면 후에 그의 죽음을 놓고 그가 조코 역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했다는 루머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필자도 <브로크백 마운틴>을 먼저 보고 후에 <배트맨_다크 나이트>를 봤음에도 조커를 연기한 배우가 히스인 줄 몰랐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조커의 역이 너무 강렬해서 히스가 나이가 꽤 많은 배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조커가 스크린에 등장하고 그가 "Why so serious."라는 대사를 읊조렸을 때의 소름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감독도 "크리스토퍼 놀란", 시리즈는 "배트맨", 주연 배우는 "크리스찬 베일"일 정도로 엄청난 영화임에도, 여전히 "조커"의 히스만이 떠오르니 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다시금 놀라울 뿐이다.
"가끔씩 자신의 천수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히스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히스는 26세에 자살한 포크 뮤지션, 닉 드레이크에 빠져서 그의 음악은 물론 기사랑 인터뷰를 읽고 그의 음악에 맞는 영상을 만들곤 했죠. 히스는 <27 클럽_27세 전후에 자살한 예술인들을 지칭함>을 언급하면서 "난 이들과 같다."며 동질감을 느꼈어요.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 난 오래 살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지금 해야 돼"라고 했어요."_<벤 하퍼>
히스는 미셸과의 지루한 결별의 과정, 그리고 딸 마틸다를 영영 보지 못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겪어내면서 육체적 정서적으로 극도록 피폐해져 간다. 자신의 삶의 커다란 부분을 강제로 떨쳐내야만 했던 시간들 가운데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결국 많은 약들이었던 것이다.
영화 <배트만_다크 나이트>에서 큰 성공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히스는 차기 작품으로 평소 존경하던 "테리 길리엄"감독의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선택한다. 그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마틸다의 양육권에 대한 미셸과의 다툼을 잊으려 자신의 몸을 학대해가면서 까지 연기에 몰입을 해보지만 결국 떨쳐내지 못한 스트레스와 불면증 때문에 많은 처방약(히스는 마약을 복용하진 않았다.)을 복용한다. 하지만 이런 처방약들도 히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의 몸을 점점 망가뜨릴 뿐이었다.
"하루는 촬영장에 왔는데 기침을 하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걱정이 돼서 의사를 불렀더니 초기 폐렴이라며 집에 가서 약을 먹고 쉬어야 한다고 했죠. 하지만 히스는 "싫어요. 지에 안 갈 거예요. 집에 가더라도 어차피 잠도 못 자고 걱정거리 때문에 뜬 눈을 지새울 테니까요. 차라리 여기서 일 하는 게 더 나아요."라고 했죠."_<길리엄 감독>
힘든 촬영 일정과 악화되는 건강상태, 그리고 그를 놓지 않았던 정신적 스트레스로 히스는 당시 애인이었던 "메리 케이트"를 만나기 위해 잠시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는 촬영장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2008년 11월 22일 히스는 자신이 머물던 아파트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고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히스의 유명세만큼이나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수많은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다. 히스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당시 히스의 나이는 29세였다. 너무나 이른 죽음이었던 것이다. 히스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냐, 라는 많은 의심들이 있어 보험사에서는 히스의 딸 마틸다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도 했었지만 후에 여론의 많은 비난을 받고 마틸다에게 1.000만 달러의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자살을 둘러싼 루머는 끝이 난다.
짧은 삶을 살다 간 히스가 이토록 오래 기억되고, 그 기억이 강인한 이유는 그가 가진 재능과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자신이 가진 가장 최상의 모습을 전성기에 보여주고 떠나버린 여러 예술가가(히스를 포함해서) 과대 평과 된 것이 아니냐, 라며 비판적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뒤로하고 그것을 지켜내지 못한 노후를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히스가 이토록 오래 기억되는, 그리고 그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된 이유는 자신의 과업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하나하나의 한계를 극복해나갔던 그의 열정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작은 해안가에서 시작된 저와 제 인생의 여정은 그 절반도 채 완주하지 못하고 마지막을 고했습니다. 하지만 완주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기준에 지나지 않기에 저에게 큰 의미를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온전했고, 충실히 실패했고 또 완벽하게 감정들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기록했던 일들과 무던히도 찍었던 사진들, 그리고 저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그 감정을 공유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이 또 다른 지평으로 나가는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고향을 뒤로 새로운 무대에서 저를 내보이는 것은 생선가게에 초점을 잃은 생선이 되는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배우라는 이름을 직업으로 대처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에너지는 빠르게 소멸되었습니다. 오히려 불안과 공황이 되어 내면의 비린내와 저를 싸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메트로 폴리탄의 매연과 편견이 가득했던 공기들은 저를 좌절하게 함과 동시에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절실하게 얻은 찰나의 기회에서 다행히 모든 것을 망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주위에 관심과 손길 때문이었습니다.
운이라는 것이 제대로 베풀어진다는 사실에 안도감보다 적막과 창피함이 남았습니다. 부끄러운 첫 기회의 기억을 실력으로 꾸미고자 노력했고, 연마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계속된 무대는 저를 집중하게 했고 본질을 찾게 했습니다. 성공의 순간은 그림자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식간에 따라붙었고 어떤 방향에서 그 그림자가 가장 선명하게 드리우는지 계산하게 했습니다. 무대에서 영웅이 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그때마다 계산은 간단했고 명료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 거울을 보고 짧은 음성으로 내지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계산이 아닌 선택을 하는 것, 제 이름을 나지막이 읊은 것, 그것이 제가 한 전붑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십 대 소년의 옷을 입는 대신 자아의 태생조차 혼동하는 광기의 악마가 되었습니다. 세기에 연인 앞에 놓인 근사한 남자가 되는 대신 카우보이가 되어 그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그렸습니다. 빛나는 대신 굳건해지고 싶었고, 주목받는 대신 이름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악마는 내게 분노를 이겨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었고, 카우보이는 제게 세상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 다가온 수많은 외연의 기회와 보장된 자리들이 제가 선택하지 않은 그 옷과 분위기일지 모릅니다. 제 이야기와 당신을 향한 표현이 결코 당신도 특벽한 선택을 하라는 강요가 아님을 알고 있겠지요.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기억될 것입니다. 다만 굳건히, 그리고 소중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내면의 비린내가 당신의 동력이 되기를, 좌절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운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그것이 당신과 이루고 싶은 감정의 전붑니다.
저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당신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어떤 결과로 채워질지 신은 알려주지 않지만 누구를 위한 선택으로 다가갈지는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온전했고, 충실히 실패했고 또 완벽하게 감정들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청춘으로 삶을 채웠습니다. 나는 히스 레저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오늘은 어떤 실패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까. 제가 남긴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당신과 질문하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히스 레저가 당신에게,
히스 레저가 청춘에게,
히스 레자가 세상의 모든 히스 레저에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무수히 많이 열려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린 채 지금의 모습만을 놓고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평가 자체가 너무나 아쉽고 슬플 때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빨리 우리 곁을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것이다.
천재는 단명한다, 라는 속설이 있다. 반대로 단명을 했기 때문에 천재로 평가받는다는 말도.
전자와 후자, 무엇이 옳던지 히스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슬프게 만족시킨 배우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죽음이 너무나 크게 다가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던 배우 "히스 레저".
여기 "히스 레저"의 삶이 보여준 커다라고 화려한 불꽃을 다룬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가 삶으로 보여준 메시지가 있다.
여기, 지금 당신은 히스가 당신에게 건넨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