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Oct 01. 2019

미안해서 미안한 것

이어진 마음

건너온 마음만큼을 내가 돌려주지 못했을 때 나는 종종 미안해진다.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건넨 만큼 좋아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지고 만다. 내 마음에 나를 맞춰서 살기 때문이다. 

도대체 마음의 크기를 어떻게 잴 것이며, 설사 크기를 가늠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있느냐 말이다. 가진 마음과 그것을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한때는 그 간극 때문에 마음이 말라버린 때도 있었다.

사실 처음엔 미안한 마음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었다. 상대의 마음을 내가 부추기지도 않았는데,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도 아닌데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느냐 까지.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이 야속하고 미워지기까지 했었다. 그럴 때면 내 입은 대쪽만큼 튀어나와버린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모든 감정들의 모양이나 크기가 서로 같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에도 양적 공평함을 들이댈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보다는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데?라는 반항적인 마음만 가득했었다. 마음밭이 거칠어지고 황량해져 물기라곤 하나도 없이 먼지만 풀풀 날리는 상태. 시간을 쪼개고 공기를 나누어 그것들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고는 상황에 맞게 꺼내어 쓰고 싶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 능숙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어렵고 먼 일이 마음에 관한 일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단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어려웠으므로 나는 미안하단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것이 마음의 문제일 때는 더더욱 그랬다. 함께 나누었던 마음조차 시간이 지나 쪼개지고 나눠지면 이내 다른 색을 띤다. 그것이 많이 슬프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당연한 것이므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슬픈 일이 당연해질 때는 더욱더 슬퍼졌다. 나는 그것 앞에서 무기력했다.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일”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생활을 해나가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만 했다. 적어도 그런 면에선 난 꽤나 부지런한 편이었다. 행여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걸 못하는 상황은 죽을 만큼 싫었으니까.

메일이 하나 왔다. 처음 보는 메일 주소였다. 수 십 통의 스팸메일 가운데서 유난히 번쩍이던 한 통의 메일.

마코토였다. 

나와 함께 수일을 네팔의 히말라야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냈던 일본인 친구. 하루의 대부분을 산을 올라야 했던 여정 가운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지탱해줬던 친구였다. 우리는 하얀 설산에 둘러싸인 그곳에서 서로에게 한국말과 일본말을 가르쳐줬었다. 설산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에.

물론 내가 마코토에게 그리고 마코토가 나에게 가르쳐줬던 서로의 언어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방법이었다. 

대충, 


“스시 사줄게. 결혼하자.”

“너는 정말 예뻐.”

“막걸리 사줄게 결혼하자.”

“나는 한국 여자가 좋아.”


이 정도의 한국어, 일본어 버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그리고 열심히 서로의 언어를 익혔었다.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 언어의 장벽 따윈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자에게 그 목적이 여자일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마코토는 나보다 대략 6~7살 정도가 많았다. 약간은 진지한 듯도 했지만 항상 장난기 가득했다. 일본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마코토는 일하는 내내 “스미마셈”을 하루에 수 백 번은 반복했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별로 "스미마셈"하지 않는 대상에게도 그저 고객이라는 이유 만으로 고개를 숙이며 수 없이 "스미마셈". 결국 자기는 “스미마셈”을 피해서 여행 온 거라고. 그래서였을까. 마코토는 나와 지내는 내내 나에겐 결코 “스미마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코토가 주로 했던 말은 “막걸리 마시고 싶다.”였다. 일본 사람이 말이다. 여전히 마코토가 어디에서 막걸리를 접하게 됐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랬던 마코토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마코토와 헤어진 뒤 나는 3개월 남짓 더 여행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도 시간이 꽤 되었으니 마코토의 메일은 우리의 만남 뒤 반년이 훌쩍 지난 뒤에 온 것이다. 반년을 묵혀둔 우리가 나누었던 마음이 다시금 메일을 통해 전해졌다. 그 시간만큼 숙성됐을 테고, 그만큼 진해졌을 것이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아, 여전히 날 기억하고 있었구나. 난 한참이나 생각을 하고 난 뒤에야 마코토의 얼굴이, 목소리가, 그의 행동이 떠올랐는데.

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은 일본에 돌아와 다시 “스미마셈”을 연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예전만큼 싫지는 않다고 했다. 얼마 후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할 것이고, 아마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내가 생각났단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우리의 히말라야 산행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졌다고. 나에게 배운 한국어 고백 법을 이제 다시 써먹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쉽다고. 그리곤 메일의 마지막에 이 말을 붙였다.


“아, 막걸리 마시고 싶다.”


그런데 이 말을 영어도 아닌, 일본어도 아닌, 한국어로 적어 보냈다. 일본인인 마코토가 "막걸리 마시고 싶다", 라는 말을 한국말로 적어 보낸 것이다.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흐려져 한참이나 모니터를 바라보지 못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그 시절 우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봤었는지. 내 마음은 마코토의 그것처럼 히말라야의 설산만큼이나 순수했었는지를. 그러다 내가 건넸던 어떤 마음들 속에서 모질고 고집스러웠던 것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이제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마코토가 선명해졌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었다.


마코토가 그리운 게 어디 막걸리뿐이었겠는가. 그립고 생각나고 아쉬운 모든 걸 담아 막걸리라 했겠지. 그리고 그 마음들을 담아 멀리 나에게 보낸 거겠지. 

뜨거운 마음을 담아 마코토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제대로 된 한국 막걸리를 꼭 사주겠다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너에게 참 미안한 일이 많았다고. 그리고 마지막에 일본어로 “마코토 스미마셈.”이라고 적어 보냈다. 정말로 미안해서 미안하다 했다.



마음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한 만큼 미안해해야 하는 거구나. 미안했음에도 보잘것없는 자존심에 미안하다 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더 미안해졌다. 미안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그것으로부터 도망쳤을 때 다시 돌아가기가 얼마만큼 힘든 일인지를 마코토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마코토의 메일 한 통이, 그것에 담긴 마음들이, 그것에 반응했던 내 마음들이 순간 아름다운 동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결국 주인공들은 행복했습니다, 로 끝나는. 


하지만 연결된 마음에 어디 끝이 있겠는가. 이어진 마음들이 이어놓은 시간들 가운데 나는 아침에서 저녁을, 봄에서 겨울을, 그리고 당신에서 나까지 모두를 사랑해야겠다. 

미안함에 미안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며.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