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Sep 28. 2019

세상의 끝 우주의 반대

반대의 것들

친구들과 카페의 테이블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갑작스러운 침묵이 우리의 대화 사이에 떡하니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순간 우주의 광활한 공허함이 우리를 둘러싸버린 것이다. 

그때 H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사이다, 콜라?”

질문을 던진 H는 나와 P를 번갈아 바라본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일종의 게임을 하곤 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 게임. 서로를 좀 더 알아가 보겠다,라고 하기엔 좀 진부하고 그저 침묵을 깨고 다시 대화의 장을 열어가 보자, 라는 정도의 가벼운 의지였다.



“나는 사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스프라이트”

P는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이제는 자기 차례라는 듯 나에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산, 바다?”

이번엔 내가 대답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커피 잔을 만지며 가만히 산과 바다를 차례대로 떠올려 본다. 그동안의 몇몇 여행지를 떠올려 보니 나는 산보다 바다에 더 자주 갔었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나는 바다보다 산과의 간격이 더 좁았다.

바다는 탁 트인 시야가 매번 부담스러웠다.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이 매번 힘들었다. 끝이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면 자꾸만 불안했고, 불안을 없애고자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끝을 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그 끝을 확인하기 위해선 결국 떠나야만 했었으니까.

반복되는 나의 여행의 실마리는 애초에 먼 곳을 바라봐야만 했던, 그 끝이 없었던 바다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산이 나에게 위안을 주는 건 또 아니었다. 나는 산을 오를 때면 항상 땅을 내딛고 있는 내 발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들을 바라본다거나 스치는 바람 따위를 느낄 여유는 없었다. 그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속으로 내 걸음수를 계속 세어나갔을 뿐. 

'하나, 둘, 셋...'

발걸음의 숫자를 세면서 산을 오르면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어서 좋았다. 그렇게 몇 백의 숫자들을 반복해서 다시 몇 백번 세다 보면 어느새 나는 정상에 다다랐다. 그리고 슬쩍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곧바로 내려오곤 했다. 그곳에서도 부러 먼 곳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결국 바다도 산도 모두 내가 고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두 곳 모두 내 마음을 둘 수 없는 곳이었다.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날 P가 재촉했다. 침묵을 깨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 나 때문에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대답했다.

“강. 산은 높아서 싫고, 바다는 짜서 싫어.”

내 시답잖은 대답에 친구들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세상의 여러 선택지를 억지로 반으로 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난 자주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갈라놓은 두 개의 선택지는 사실은 나에게는 매우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이다와 콜라가 그랬고, 산과 바다가 그랬다. 그것들은 서로의 반대편에 놓여있는 것들이 아니라 나란히 어깨를 둘르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어느 것이라도 괜찮기도 했으며 때론 둘 모두 불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 반대의 단어들은 선명하다. 억지로 붙여 놓으려 해도 자연스레 멀어질 뿐이다. 그것들은 세상의 끝, 우주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한다.

사랑했다.

있다.

있었다.

지금.

그때.

남극.

북극.

그리고 당신과 나.

서로의 반대편에 서있는 단어들.


그것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확실해서 도무지 선택을 미룰 수 없는 것들이다. 자꾸만 침묵하는 나를 몰아세워 나의 대답을 재촉한다. 하나를 가지면 반드시 하나를 놓아야만 한다.



나는 상상해본다. 어쩌면 이 모든 반대의 단어들도 실은 세상의 뒤 편, 어둠 속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모두가 잠든 어둠의 고요한 시간에 살며시 눈을 뜬 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둘 모두를 붙잡고 싶고, 목을 매고, 여전히 선택하지 못하고는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결국 거짓 희망의 단잠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하나를 골라야만 하며 그러므로 하나를 놓아야만 한다.

그 시절 나에겐 사랑했던 당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반대의 것들은 이처럼 나에겐 한없이 잔인했고, 그 속에서 난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보지 못한 채 바보 같은 발걸음만 세고 있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