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너를 사랑할 거야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원고의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개봉 소식을 듣고 필자에겐 굉장히 반운 마음과 약간의 걱정이 공존했다.
그 이유는 꽤 오래전 이긴 하지만 원작인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처음 봤을 때의 아련하고 풋풋했던 감정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와 동시에 만약 이 영화가 원작의 그것에 미치치 못한다면 자칫 처음의 그 감정까지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향한 두 가지의 상반된 마음을 품고 필자는 극장으로 향했다.
비의 계절, 기적 같은 순간을 담고 있는 영화이기에 여름의 장마 기간에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겨울의 끝나고 봄의 시작을 이 영화와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같은 제목의 일본 영화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사실 일본에서 개봉했던 영화도 일본 작가 "이치카와 다쿠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이니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원작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조금은 복잡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오가는 영화의 복잡성 만큼이나 영화 제작의 히스토리 또한 남다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익숙한 해바라기가 가득한 곳에서의 애틋한 만남을 담고 있는 원작 영화의 포스터는 여전히 필자에게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이 영화가 리메이크되어, 게다가 손예진과 소지섭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하지만 그 반가움을 차치하고,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장단점은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동명의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했다기보다는 사실 철저하게 복제한 것에 가까웠다. 스토리의 진행도 바뀐 것이 없고, 영화의 배경에서부터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대화까지도 말이다. 캐릭터의 전형적인 성향과 느낌까지 그대로 복사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바뀐 것이 있다면 여자 주인공이 조금 예뻐지고 다소 밝아졌다는 것과, 남자 주인공의 외모가 지나치게 잘생겨졌다는 것 정도.
쉽게 말해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철저하게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사실 원작 소설과 원작 영화는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조차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예쁘고 잘생긴 외모의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는 것은 수익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탁월했고 안정적일 것이다. 게다가 개봉일이 3월 14일. 봄이 화이트데이까지 껴안고 온 이 시점에서 수많은 연인들이 자의반 타의반에 극장으로 향했고 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분명 크게는 아닐지라도 상업적으로 안정적으로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길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영화가 원작 영화를 그대로 답습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조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원작 영화가 정말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굳이 무리해서 억지로 차별성을 둘 필요는 없다. 주인공이 바뀌고 배경인 나라가 바뀐다면 충분히 신선함을 줄 수도 있다. 어떤 강박으로 되지도 않는 변화를 시도했다가는 자칫 영화의 주제를 벗어나버리고 마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철저하게 원작에 충실한 안정적인 선택을 했고, 새로운 시도나 도전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됐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작지만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원작과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한국적 개그 요소의 가미이다.
실제로 원작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다소 어리숙한 모습에 가볍게 웃음이 지어지긴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론 웃음의 요소가 나타나 있진 않다. 하지만 한국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새로운 캐릭터인(실제로 별로 중요하진 않음) 우진(소지섭)의 친구인 홍구(고창석)를 출연시킴으로써 한국적 개그의 요소를 더했다. 게다가 우진과 수아(손예진)의 사랑이 시작된 과거의 회상 장면에서도 몇몇의 웃음 포인트들이 숨어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여러 번 웃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론 한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문화라고 생각된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얌전한 일본의 문화에 비해서 조금은 더 밝고 쾌활한 한국적 문화를 잘 녹여냈다. 그런 포인트들이 영화의 큰 주제에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갈 수 있었으니 그 부분이 좋았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영화인 것 같다. 물론 주인공 수아 역의 손예진이 여전히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외적인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여주인공이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영화에서 우진과 우진의 아들 지호(김지환)는 어느 정도 수동적인 역할이다. 새로운 선택과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기적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아름답고 기쁘게 받아낼 뿐이다. 결국 그 "기적"을 만든 사람은 바로 수아였고, 그녀의 선택이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수아다.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주제는 수아의 선택에 의해서 진행되었고, 시작과 끝이 수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만큼 수아의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본다면 바보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아는 매번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우진과 지호) 소중히 여기는 선택을 했다.
자신의 모습에 자신이 없어 수아를 포기하려 했던 우진을 붙잡았던 사람도, 자신이 우진을 선택한다면 결국 자신의 죽음도 딸려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진과 지호를 선택한 사람도 수아였다.
하지만 매번 그 선택 앞에서 수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 오는 날 시작된 6주간의 기적이 그들의 가정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와 함께 영화를 감상한 Y도 결국 사랑을 사랑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수아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말도.
사실 영화이니까 가능하지 않겠느냐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수아의 선택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것에 가깝다. 과연 누가 뻔히 보이는 죽음의 길을 선택하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행복이 보장된 길이 아닐 수 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에서 수아의 선택은 어쩌면 현대 사회의 사랑을 선택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가치관을 나무라고 있는 것 같다. 조건을 따지고 상황을 따지고 상대에게 보장되어 있는 미래의 안정감이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을 넘어서 버리고 있는 냉정하고 현식적인 선택을 말이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크게 두 번의 이별이 있다.
첫 번 째는 수아가 지병으로 인해 우진과 지호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이했던 이별이고, 두 번째 이별은 비의 계절 기적처럼 돌아온 수아가 6주간 우진과 지호와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장마가 끝나고 돌아가야만 했던 이별이다.
두 번 모두 우진과 지호는 수아를 떠나보내야만 했고, 수아는 떠나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이별이라는 것 앞에서 상실의 무게가 어느 쪽에 더 무겁게 작용하느냐를 감히 가늠하긴 어렵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론 떠나야만 했던 사람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선택에 의한 이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음"이 배재되고 자의에 의한, 스스로를 위한 이별은 어쩌면 정서적으로는 건강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이별 자체에 묶여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이별을 함으로써 더 건강한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이별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번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수아에게 이별은 무척이나 잔인했을 것이다. 그 이별들 앞에 오히려 생 살을 떼어내듯 아팠던 사람은 우진과 지호가 아니라 수아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별 앞의 감정과 시간조차 온전히 남겨진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남겨질 우진과 지호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들을 사용하고, 자신이 없을 때의 그들을 위해 준비를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슬프면서도 슬프지 않을 수 있었다. 이별이 두 번이나 행해졌지만 사랑이 가득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형식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타임 슬립"이다.
사실 이런 설정은 요즘에는 그리 신선한 선택은 아니다. 이미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영화가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원작의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엔 굉장히 신선하고 놀랍고 흥미롭기까지 했을 것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사랑이야기는 신비로울 수 있으나 자칫 비현실적으로 흘로 가기 쉽지만 여 영화는 타임 슬립의 단점은 극복하고 장점은 극대화시킨 것이다.
어느덧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는 일본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어 버렸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두 영화 모두 타임슬립의 소재를 핵심으로 한 영화였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여주인공과 수아가 느꼈을 감정은 자신의 힘으론 바꿀 수 없는 이별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잔인한 현실이었을 것이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마지막 순간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남자 주인공의 선택이 죽음이 앞에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돌아간 수아와 비슷했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기에 가능했고 사랑이었기에 슬프지만 슬프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위 두 편의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차분히 생각해보지 않으면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는 이해하기 난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주인공은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사는 것인가?'
'주인공이 먼저 겪었던 미래가 과거의 모습을 바꿔버린 것인가?'
'미래가 먼저인가? 과거가 먼저인가?' 등등의 궁금증으로 관객의 시간은 마가 뒤엉켜 버리가 일쑤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마찬가지다. 자칫 흐름을 놓치면 영화의 시간이 뒤엉켜 버린다. 하지만 사실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나 싶다. 마지막 순간에야 풀리는 비밀. 그리고 그 비밀이 안고 온 아련하고 애절한 마음. 그 마음이 이해됨으로써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었다는 점 까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분명 잘 만들어진 영화다. 원작 자체가 워낙 신선했고 흥행까지 했으므로 리메이크 영화로서 실패하기 힘든 영화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건 고민의 흔적이다. 처음 원작이 제작되었을 때, 감독 및 제작진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배우의 캐스팅, 배경의 선택, 배우의 얼굴을 잡아낸 카메라 앵글의 거리와 각도, 거기에 더해진 음악까지 말이다. 그런 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선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원작의 것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좋은 점을 따라한 것이 뭣이 나쁘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고민이 투영되지 않은 결과물은 미세하게나마 부족한 부분이 있다.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인위적인 부분이 있다.
결국은 이 영화는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멜로 영화였다. 장점이라면 손예진과 소지섭의 캐스팅이었고, 단점이라면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였다.
하지만 분명 확실한 건 이 영화에는 감동의 포인트가 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원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고, 이미 원작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굳이 한 번 더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마친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