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전호 Mar 04. 2018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같은 꿈이 이어준 사랑의 시작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고의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필자에겐 약간은 생소한 헝가리 출신 감독 "일디코 엔예디"의 영화이다. 

영화 감상의 폭이 극히 편협하고 취향조차 확고한 편이라 그것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 있어 약간은 소극적인 필자가 조금은 낯선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선택한 이유는 사실 단 한 가지였다. 

여자 주인공인 마리어(알렉산드라 보르벨리)가 영화 포스터에서 보여준 저 눈빛. 

포스트에 등장한 마리어의 눈빛은 포스터에 설명된 것처럼 사랑에 서툰 여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는 눈빛이다. 마치 저런 눈빛을 가진 여자가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면 당장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사랑에 서툰 여자 마리어가 과연 어떤 과정을, 어떤 사랑을 만들었길래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실제로 감독을 비롯한 영화의 스텝들은 영화에 어울리는 여주인공을 찾기 위해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여주인공의 비중이 높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들이 보내는 6개월의 인고의 시간이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성공(?)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자, 그럼 이제 사랑에 서툰 여자 마리어와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 엔드레가 만들어가는 드리밍 러브스토리를 찾아가 보도록 하자.



01. 조금은 낯선_하지만 신선한 시도



1. 몽환적인 꿈의 세계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첫 장면은 하얀 눈에 뒤덮인 설산에 등장한 두 마리의 사슴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나무와 눈 밖에 없는 하얀 공간에서 수사슴이 암사슴을 보살피고 있다. 서로의 숨이 교차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겹친다. 누가 보더라도 부부(?) 사슴이 분명해 보인다. 후에 나오지만 이 장면은 두 주인공인 마리어와 엔드레가 꾸는 꿈의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두 주인공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자 두 사람을 엮어주는 매개체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 꿈의 장면이 영화에서 가지는 의미는 더 크다. 

표면적으로 엔드레를 대변하는 숫사름과 마리어를 대변하는 암사슴이 등장하는 꿈의 세계는 오롯이 두 인물만이 존재하고 두 인물이 어떤 장벽과 어려움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꿈은 두 사람이 실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현실과 대립되는 세계인 것이다. 

약간 곁가지의 이야기로 영화에 등장하는 사슴의 모습을 담기 위해 어떠한 CG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숙련된 조련사에 훈련된 숙련된 사슴들이 연기했다고 하니 사슴도, 제작진의 노력도 놀랍다.



현실에서 엔드레와 마리어는 각자가 가진 상처와 결핍으로 타인과 관계 맺음에 있어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꿈의 세계만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고 진심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 첫 장면으로 등장하는 꿈의 세계는 닿지 않는 이상의 세계이자 그럼에도 우리가 열심히 쫒아가고 있는 현실의 반대편인 것이다.


2. 조금은 사실적이고 잔인한 현실


첫 장면이 지나가고 영화는 배경을 바꾸어 엔드레와 마리아의 삶이 걸쳐있는 도축공장으로 장면을 옮긴다. 

감독의 의도가 어렴풋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 등장하는 소의 도축 장면은 정말이지 너무나 현실적이고 자세하다. 전기 충격기로 소의 삶을 순식간에 꺼버리고 목을 자르는 장면. 바닥에 쏟아진 선명하게 붉은 피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무감각해져 별 다른 감흥이 없이 자신들의 일을 하는 사람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도살 장면은 육식에 걸친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준 영화 <옥자>의 그 장면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도살장이 보여주는 무감각한 잔인함이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관계를 맺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감독이 관객에게 던진 물음이자 도전은 아닐까?



02. 설명되지 않는 상처_서툰 사람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철저하게 두 주인공인 엔드레와 마리어에게 집중되어 있다. 독특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비중이 적다. 카메라는 엔드레와 마리어에 집중해서 그들을 클로즈업하고 그들의 대사보다는 움직임과 눈빛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 정도로 주인공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그들의 극 중 캐릭터로 채워진 영화는 풍부하고 풍족하다.

오랜 시간과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순수하게 정제된 맛 좋은 소금처럼 영화는 엔드레와 마리어에 의해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1. 사랑에 서툰 여자_마리어



여자 주인공 마리어의 현재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사람의 과거가 모여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현재가 모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사람을 관통하는 삶이라는 결은 어느 정도의 예측 가능한 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지 일순간 갑작스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은 영화에서 나타는 마리어의 현재에 대한 과거라는 근거를 제공받지 못한다. 

왜 그녀는 탁월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녀는 타인과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는지.

왜 그녀는 신체접촉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격한 거부반응을 보이는지.

결정적으로 왜 그녀는 사랑에 서툴고 누구나에게 자연스러운 사랑의 현상이 그녀에게만은 노력을 요구하는지.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영화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대변하자면 이렇다.

고기의 품질을 평가하는 품질 관리사.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부족한 의사소통능력. 강박증 혹은 결벽증. 신체접촉 거부. 스스로 만든 울타리 안에 갇혀 지냄. 하지만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음. 



마리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이상하고 모호하게 신비롭다.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이라고 하기엔 파격적이지만 나름 신선하기도 하다. 마리어의 모습을 정신적인 질병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도 영화는 해주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어린이의 심리를 다루는 치료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이 모습을 통해서 마리어는 성인이지만 성인으로서 응당 겪고 고민해야 했을 어떤 것에 대한 부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사랑 자체를 어렵고 난해한 문제로 만든 것이다. 

또 그녀의 뛰어난 기억력도 문제라고 하면 문제일 것이다. 마리어는 그녀가 첫 생리를 한 날짜와 수두를 걸린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또 엔드레가 그녀에게 건넨 말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어느 것 하나 망각하지 못하고 모든 걸 껴안고 산다는 건 상당히 끔찍한 일일 것이다. 마리어는 마땅히 잊어버려야 했을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 기억들이 때론 그녀의 현재에 간섭하여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렇게 자신의 문제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랑에 서툰 여자 마리어가 있다.


2.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_엔드레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엔드레에 대한 설명 역시 부실하다.

엔드레는 도축공장의 재무 이사이다. 그리고 그는 왼팔을 쓰지 못하는 불구이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왼팔을 쓰지 못했는지, 아니면 어떤 사고를 겪어 그렇게 되었는지 역시 설명해주지 않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엔드레는 혼자 살아가고 있다. 결혼도 했었고 짧지만 영화에서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와 딸도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그가 별거 중인지 아니면 이혼을 한 상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엔드레의 삶의 모습은 그의 선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때 치열하게 사랑을 했던 그는 어느 순간 모든 욕망을 놓아버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노력도, 관계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도 놓아버리고 쳇바퀴 돌듯 무료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엔드레는 외적으로는 상당히 잰틀한 모습과 대화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히 이성적이다.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호기심도 가지고 있으며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용기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용기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집에 홀로 남은 엔드레를 비추는 색감은 상당히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다. 엔드레에게 결여된 것은 움직이지 않는 그의 왼 팔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 엔드레. 마리어는 식어버린 엔드레의 감정에 자극을 줄 수 있을까?



03. 꿈이 엮어준 사랑의 시작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서 엔드레와 마리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꿈이다. 그것도 두 마리의 사슴이 등장하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꿈.

사실 서로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 엔드레는 몇 번인가 마리어에게 다가간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건넨 배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리어는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는 엔드레를 밀어낸다. 

첫 대화를 나는 그날 저녁, 마리어는 집에 돌아와 엔드레와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음에 어려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엔드레는 엔드레대로, 마리어는 마리어대로 자신만의 패턴과 삶의 속도를 지켜내며 지내던 어느 날 도축공장에는 큰 소동이 벌어진다. 공자의 약품실에서 소의 발정제가 도난당한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 등장하고 또 형사의 추천으로 공장 직원들은 모두 심리상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상담사는 엔드레와 마리어에게 각각 꿈에 대해서 묻게 되고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알게 된 것이다. 두 마리의 사슴이 등장하는 바로 그 꿈 말이다.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라는 놀라운 사실. 서로가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가 공유점을 찾게 되었고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2. 사랑의 태동



서로가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리에와 엔드레는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꿈을 꾼 다음 날 서로의 꿈을 확인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계기로 많은 말들을 하게 된다. 공통점이 없었던 그들에게 대화의 소재가 등장했고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퇴근 후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따로 만나는 일이 늘어갔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대화를 하고, 눈빛을 교환하게 되면 당연히 어떤 감정이 태동하기 마련이다. 마리어와 엔드레도 그랬다. 

꿈을 꾸기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기대됐고, 다음 날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아침에 되면 서로가 꾼 꿈을 글로 적어 교환하기도 한다. 헤어지면서는 오늘 저녁, 그러니까 꿈에서 만나요, 라는 달콤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그들의 사랑이 느리고 약하지만 확실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3. 서로가 달랐던 사랑의 속도



마리어는 사랑이 서툰 여자였다. 어쩌면 지금껏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사랑 자체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리어는 누군가에겐 저절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사랑을 연습해야만 했다. 노력이 필요했다.

저녁엔 장난감을 이용해 엔드레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다음 날 자신에 할 말을 미리 연습해보기도 한다. 핸드폰이 없다는 자신의 말을 거절이라 생각하고 낙담했을 엔드레를 위해서 생에 처음으로 핸드폰을 개통하기도 한다. 



마리어는 사랑의 감정을 배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지 관찰을 해보기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여성으로서 자신의 매력을 찾기아보기도 한다. 레코드 가게에 들러 사랑에 관련된 노래를 모조리 들어본다. 필자 개인적으론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서 좋았던 부분이다. 마리어가 사랑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배워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마리어에게 사랑은 굉장히 낯선 감정이었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녀는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엔드레는 마리어와는 조금 달랐다. 

사랑의 모든 걸 하나부터 열 까지 배워야 했던 마리어는 더디고 느렸지만 엔드레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랑을 겪어봤고 풍부한 여자 경험으로 사랑에 있어서는 능숙했고 마리 어보다 빨랐다. 

모든 욕망을 끊어버린 후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마리어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초라하게 느껴진 것이다. 마리어의 조금은 느린 속도에 초조해진다.

결국 자신의 속도에 맞춰 따라오지 못하는 마리어가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이 없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는 "우린 이런 관계가 맞지 않아요."라는 날카로운 말을 마리어에게 건넨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확실하게 사랑을 쌓아가고 있었던 마리어에게 말이다.



생에 처음 느꼈던 사랑의 감정.

생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던 사람.

그리고 자신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사람으로부터의 거절.

마리어는 결국 자신의 손목을 긋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사랑의 속도가 다른 건 당연하다.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고 담고 있는 감저의 크기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 같다면 그 사실 만으로도 기다려줄 수 있고 불안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인데. 두 사람 모두에겐 어려웠나 보다.



마리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때, 엔드레는 마리어에게 전화를 건다. 

마리어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마리어도 엔드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서툴렀던 여자와 능숙했던 남자의 입술에서 드디어 사랑한단 말이 나온 것이다. 둘은 그날 저녁 함께 밤을 보내고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04. 필자의 감상_끝이 시작인 영화


영화가 끝나고 드디어 사랑을 시작했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조금은 다행이라고도 생각했고 비록 영화지만 그들의 앞으로의 사랑을 응원하게도 되었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마지막 장면은 조금 인상적이었다. 함께 밤을 보낸 엔드레와 마리어는 다음날 함께 아침을 먹는다. 손이 불편한 엔드레는 빵을 먹으면서 부스러기를 식탁 위에 흘리게 되고 그 부스러기를 마리어가 손으로 쓸어 치운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들만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분명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그것도 상처와 부재로 인해 사랑이 어려웠던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자라온 환경이 다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같은 방향의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다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달랐던 서로의 모습이, 환경이, 세계관이, 속도가 같아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영화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엔드레와 마리어의 모습을 담으며 끝이 난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끝 부분에 영화 <500일의 썸머>를 붙여 본다면 사랑의 시작과 끝의 모습이 연결되지 않을까 약간의 장난 어린 심술을 부려본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