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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Mar 25. 2018

레이디 버드

새장을 벗어나고 싶었던 작은 새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원고의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 영화"입니다.)




신선할 수도 있고,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영화 한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배우로서 잘 알려진 "그레타 거윅"감독이 자신의 소녀시절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한 자전적인 영화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겪었던 사춘기, 혹은 중2병으로 치부되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한 시절을 겪어내는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다소 식상했다. 사실 이런 청춘물(?)의 영화는 이미 여려 개봉을 했었고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봤던 영화 <지랄발광 17세>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면의 약간의 걱정은 필자가 남자라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사춘기의 시절을 겪었지만 영화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여자였고, 남자와 여자의 사춘기는 명명된 이름은 동일하다 할지라도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연 필자야 영화의 주된 이야기의 흐름에서 사건의 향상과 원인, 감정의 흐름을 수긍하면서 따라갈 수 있느냐, 라는 걱정이 있었다. 

어쨌든 영화 <레이디 버드>는 이미 해외에서 수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이므로, 걱정보다는 기대를 조금 더 앞세워 영화관에 입장했다.



01.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_혹은 중2병


영화 <레이디 버드>의 첫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반, 그 첫 학기를 시작하는 등굣길에 크리스틴은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는 "정말로"달리는 차 위에서 뛰어내려버린다. 씽씽 달리고 있는 차에서 말이다. 결국 영화의 중반부까지 크리스틴은 팔에 깁스를 한 채 나오고, 관객들은 이 첫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충분하게 크리스틴의 캐릭터를 파악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 설명에 있어서는 이 영화만큼 친절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1. 비행소녀라기엔 귀여운



사실 주인공 크리스틴은 비행소녀라고 보기엔 상당히 귀엽다.

그건 우리가 이미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춘기의 여러 모습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시간적 배경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2018년도가 아니라 그 전의 미국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시절 사춘기의 대표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크리스튼의 모습은 현실의 중2병으로 대변되고 있는 우리 시절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모습보다는 예측 가능하고 덜 괴팍하고 수용 가능한 범위의 작은 반항 정도에 불과하다.

또 그녀의 이런 모습조차 성장이라는 큰 과정의 일부분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서툰 크리스틴의 모습이 영원히 이어질 모습이 아니라 언젠가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한 마리의 아름다운 새처럼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젠가 그 시간들을 겪고 견디며 지금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2. 실패를 통한 성장



모든 사춘기 소녀가 그러하듯 크리스틴의 관심은 친구와 사랑이다. 그것도 듣기만 해도 설레고, 자신만의 부푼 환상을 마구 투영해서는 한 편의 아름다운 판타지를 만들어 낸 "첫사랑".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는 크리스틴의 과거에 대해 설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현재 그녀가 바라고 쫒고 있는 사랑이 바로 그녀의 첫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틴은 우연한 계기로 들어간 연극반에서 "대니(루카스 헤지스)"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대니 또한 크리스틴을 좋아한다. 어떻게 첫사랑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둘은 완벽하게 사랑을 하고 아름답게 감정을 나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크리스틴의 삶에 유일하게 찾아온 빛이자 희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어쩐지 모든 게 술술 잘 풀리는 듯싶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그녀에게 가져다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대니는 사실 게이였던 것이다. 결국 크리스튼의 첫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크리스틴에게 다음 사랑이 찾아오게 된다. 대니와 함께 갔던 공연장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카일(티모시 샬라메)"에게 빠지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론 얼마 전에 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역을 연기했던 "티모시 샬라메"가 나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순간 혹시 카일도...?라는 약간은 웃픈 걱정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본 관객이라면 필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어쨌든 카일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 크리스틴은 이번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에 대해 방관적이고 허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카일이 무척이나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한다. 

영원할 것 같고 아름답기까지 했던 카일과의 만남은 그와 첫 경험을 한 후 산산이 부서진다. 크리스틴이 카일에게 거부당했다거나, 관계 이후에 카일이 크리스틴을 밀어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환상 속에서 기대했던 그녀의 첫 경험이 현실에서는 달랐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사랑의 완성이자 새 도약이라고 여겼던 관계는 오히려 그녀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크리스틴은 실망하게 된다.



카일과의 만남에서도 실패하게 된 크리스틴은 오히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친구 "줄리(비니 펠드스타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그 시절 우리에게 친구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의 모난 부분과 비이성적인 모습조차 내 편에 서서 날 감싸줬던 친구. 크리스틴에게 줄리는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카일과 친해지기 위해 한동안 줄리를 멀리했었다. 자신을 믿어주고 소중히 여겨줬던 줄리보다는 허세에 가득 찬 제니를 카일과 친하다는 이유로 가까이한다.

사실 우리가 그랬었다. 내가 가진 모습은 한 없이 초라하고 부족해 보였다. 옆에 있는 소중한 친구보다는 진심은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진 친구에게 다가가려 했었다.

크리스틴도 사랑에 실패하고 소중한 친구를 잃어가면서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우리 모두는 실패를 통해서 성장을 하게 되었고, 성장했으므로 그 시간조차 소중했음을 기억한다.



02. 가족이라는 울타리


영화 <레이디 버드>는 어느 정도 "가족 영화"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주인공이 감정의 변화를 겪어내는 공간도 학교보다는 가정이었고, 소중한 것을 모른 척했고, 다시 놓쳤던 것을 찾아낸 곳도 가정이었다.


1. 엄마이자 한 명의 여자



크리스틴과 갈등을 겪는 주된 인물은 바로 엄마이다.

사실 사춘기 시절 소녀들의 주된 적이자 동반자는 바로 엄마일 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딸인 크리스틴의 행동, 말투가 모두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건 상투적인 불만은 아니다. 이미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왔고, 한 가정의 엄마로서 현재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엄마는 앞으로 딸이 겪게 될 고민과 어려움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을 잔소리를 포장해서 딸에게 뱉어내고 있는 것이다. 딸에게 좀 더 편하고 쉬운 길을 제시해주지만 딸은 가장 닮기 싫은 모습이 엄마라면서 엄마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가난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지만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모두 다 엄마 탓으로 돌린다.



졸업식의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함께 사라건 크리스틴과 엄마.

필자는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이 나눈 대회가 인상 깊었다.


"엄마는 나를 싫어해."

"나는 네가 최고의 모습이길 기대해."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엄마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 말고, 나를 좋아해?"


크리스틴이 엄마와 겪는 갈등은 바로 "사랑"과 "좋아함"의 간극이었다.

엄마는 크리스틴을 사랑한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세상 그 어떤 엄마가 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부모로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딸을 사랑한 만큼 딸을 좋아할 수 있을까?

딸이 하는 행동을, 말투를, 품고 있는 마음을 온전히 모두 좋아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하는 건 부모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화길 희망하고 그 희망이 잔소리를 만들어낸다. 사춘기 시절을 겪고 있는 딸은 엄마의 잔소리를 사랑이라 여기지 못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밤을 새 가며 딸의 드레스를 고쳐주고 만들어준 것은 엄마였다. 카일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울먹이는 딸을 데리러 가고 위로해준 사람도 엄마였다.

딸의 최고의 친구이자 영원한 내 편은 바로 엄마인 것이다. 비록 매일 티격태격하고 각을 세우고 모난 마음을 서로에게 들이댈지라 하더라도 말이다.

고향을 벗어나 타지의 대학으로 떠나려 하는 딸에 대한 서운함으로 그녀와 말조차 섞지 않으려 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라는 반문을 갖게 되었다.

덤으로 영화 <레이디 버드>는 이미 사춘기를 무사히 졸업하고 그 시절 모질었던 마음에 대해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엄마와 딸이 보기에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도 했다.


2. 딸이 최고인 아빠



잔소리꾼인 엄마와 반대로 아빠는 딸인 크리스틴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아버진 고용 상태가 불안하고 이제는 가정 내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딸인 크리스틴에게 있어선 영원한 방패막이자 자기편이다.

이 모습은 비단 우리 가정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들에겐 다소 엄할지라도 딸에게 아버진 항상 관대하니까 말이다.

자신의 능력이 비록 부족하다 할지라도 딸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 그리고 골이 깊어져 버린 딸과 엄마를 화해시키는 사람도,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 건네지 못했던 딸과 엄마의 마음을 연결해준 사람도 아버지다.

가정이라는 것이 탄생하고 그 단단한 기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청춘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만큼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 아버지로서는 무척이나 힘들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가정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그래도 견고하게 지켜내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아버지이지 않을까?



03. 삶을 만들어준 기름진 토양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은 현실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소녀이다.

일단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의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 부모님이 지어진 평범한 이름인 크리스틴을 부정하곤 자신이 지어준 이름인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길 원한다.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걱정한 부모님이 보낸 미션 스쿨도 못마땅하다.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도 철길 옆의 후진 곳이라고 부르며 자신만큼은 성공해서 멋진 집에 살길 희망한다.

쉽게 말해서 그녀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만들어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착같은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하게 된다.

대기번호에 올라있어 불안했지만 결국 뉴욕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걱정거리였던 등록금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때때로 그녀의 부모님도 그녀를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었다. 지겨웠던 미션 스쿨에서도 탈출하고 뉴욕으로 올라가 자신만의 삶의 터전도 마련한다.



이 모든 것들 이루게 된 크리스틴은 만족하고 행복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공허해진다. 그녀의 공허함은 그녀가 가족을 떠나 뉴욕에 자리 잡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뉴욕에서 술에 취한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더 이상 레이디 버드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병원에 실려가고 어딘지도 모른 곳을 떠돌던 그녀는 교회의 예배를 보면서 평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는 새크라멘토의 거리가 기억난다고, 그립다고 고백한다. 힘들었던 만큼, 그만큼 크리스틴은 성장한 것이다.

사실 그녀가 부정하고 떠나고 싶었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준 튼튼한 기초이자 기름진 토양이었던 것이다. 사춘기 시절 우리가 부정하고 없애고 싶었던, 그 싫었던 모든 것이 어느 날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앞에서 말했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레타 거윅 감독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춘기를 겪었던 모든 소녀들의 이야기 이진 않을까?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다시 한번 알려준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



04. 필자의 감상_그래서 지금 행복하잖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 한 가지는 필자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이었다.

영화는 사춘기를 겪어낸 소녀의 이야기였으니까. 여자만이 느끼고 가지고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미묘하고 세세한 감성과 불안정한 감정을 사실 필자는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좋았던 점은 결국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소중한 것에 상처를 줬을 때 얼마만큼 건강하게 화해를 건넬 수 있느냐가 영화에 잘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여기, 서툴고 불안정한 한 소녀 "레이디 버드"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불안정한 소녀를 바라보며 그래도 사랑을 건네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의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면 조금을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레이디 버드"였다. 그리고 그 시절의 우리를 지켜준 소중한 사람이 바로 가족이었고 친구였다.

비록 문화의 차이가 있기에 영화 속 관계들은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긴 했지만(한국에서 불만이 가득하고 반항적인 딸에겐 따듯한 대화보다는 등짝 스매시가 우선이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비슷하듯 영화를 보면서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행복했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그 시절, 가슴속에서 끓어올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알지 못해 어려웠던 그 시절. 하지만 그 시절을 따듯했던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견뎌낼 수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행복하지 않느냐,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 던지며 리뷰를 마친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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