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요, 청춘中]
여덟 살의 언저리 즈음 에펠탑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아빠 가보시던 신문의 한 귀퉁이였던 것 같다.
멋진 파리의 모습과 함께 주황빛으로 물든 반짝이는 에펠탑의 야경 사진이었다. 얼마를 내면 푹신한 침대가 있고 지금까지 당신이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 있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면 화보가 되는 파리의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하겠습니다,라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여행사의 광고였다.
당시 난 사진 속 에펠탑을 보고 저건 뭐지? 하는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 여덟 살 사내아이에게 에펠탑보다는 딱지치기가 우선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에펠탑에 무심했고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 바깥 세계에 무감각했을 나이였다.
그러고는 학교라는 곳에 구속당했고 시간의 순리로 그곳에서 벗어나니 다시 사회라는 곳에 절망하고 순응하며 그럭저럭 살아왔다. 신문 한 귀퉁이의 에펠탑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가슴속에 에펠탑을 키우기엔 학교는 좁았고, 사회는 절대적이었으며, 결국 난 마취되었다.
그렇게 이십 년이 지난 뒤 파리에 왔고 지금 에펠탑 앞에 서 있다.
풋내기 어린 시절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나에게 지금 에펠탑은 눈앞에 만질 수 있는 실재로서 존재했다.
순간 이십 년의 시간은 압축되었고, 학교와 사회는 지워졌고, 여덟 살 어린아이의 잊힌 꿈은 현실이 되었다.
이십 년 이상을 포도주 병에 담긴 포도주를 열었지만 반갑다고 그것을 한입에 털어 넣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라니. 실감이 나질 않아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볼을 꼬집어보고만 싶다.
그러면 여자가 철썩 내 뺨을 올려붙일 것이고 그때서야 나는 ‘아, 여기가 파리구나’ 실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