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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Mar 31. 2021

빛 방울이 하늘에 흩어져 있잖아

겨울이다.

겨울이 찾아왔다. 

광활한 시베리아의 어딘가, 단단한 얼음에서 시작되었을 차가운 공기덩어리가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날아와 하늘에 흩뿌려진 계절이다.

나는 겨울을 피해 급히 포르투갈을 떠나 세비아행 야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유럽의 아래쪽 끝자락 스페인. 그곳에서도 남쪽에 자리한 세비아의 겨울은 겨울이지만 겨울답지가 않다. 

오렌지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 벤치에 가만히 앉아본다.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라니. 이거 참, 설레어서 난감하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덩어리를 막아주는 게 오렌지 나무는 아닐까.


그렇게 벤치에 가만히 앉아 도시를 관통하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 도시의 사람들의 여유가 바로 저 햇살에서 나오는구나, 생각이 든다. 오렌지 빛을 닮은 따듯한 색의 햇살.

사계절을 나도 저런 햇살을 받아내며 살아간다면 각진 내 마음도 조금은 둥그러지지 않을까. 조금은 더 웃고, 조금은 더 예쁘게 말하고, 조금은 더 천천히 걷고, 조금은 도 넓고 높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조금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도시 한복판을 지나 과탈키비르강으로 향한다.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초록빛들이 길을 안내해주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사람들의 훈풍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만큼 강변 공원들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년들,

다정히 손을 잡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 산책을 하는 노부부,

아빠가 만들어준 무지개 빛 빗방울을 쫒아 세상 끝까지 뛰어갈 것 같은 어린아이.

다들 자신들만의 행복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행복해한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고 안으로, 안으로 숨어든다.

사실, 내가 했던 모든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나의 행복이 당신의 행복의 이유라도 되는 마냥. 나중에 더 크게 돌려주겠다며 당신의 시간을 빌리고 마음을 빌려와 내 멋대로 사용했다.

내 행복을 위해 당신의 행복을 허락도 없이 그렇게 멋대로 들고 와 버렸다.



저기 저곳, 나란히 앉아 달달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라는 걸 확신하는 단단하고 견고한 눈빛.

여자의 왼손 위에 따듯하게 포개어진 남자의 오른손. 그들의 공간을 채우는 따듯한 공기.

그런 사랑스러운 풍경이 나를 꾸짖는 것 같다. 행복은 빌려오는 게 아니라고. 훔쳐오는 게 아니라고. 

행복은 함께 만들어 가는 거라고.


세상에 없는 행복을 찾아, 여행이 마치 행복의 정답이라도 되는 마냥 그렇게 모질고 무모했었다. 

그 모든 것을 청춘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넣오 두고는 괜찮다 괜찮다 타이르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변명했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 세비아의 따듯한 겨울 햇살 아래는 여러 모양의 행복으로 자신들만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옆에 함께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향하는 여행을. 



눈부신 빛 방울들이 세비아의 하늘에 흩어지고 있었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자 나는 그저 가만히 그 빛 방울들을 얌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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