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는 규칙이 있다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목요일 저녁 나는 퇴근을 하고 희형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아침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우유도 거의 다 떨어져 갔고 몇몇 야채들을 시들시들했다. 황량한 냉장고 안은 맥주 두 캔과 달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거 오늘 장을 보지 않은면 굶어 죽을지도 모르겠는데?,라고 나는 남은 우유를 컵에 따르며 말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희형이 내 말을 듣더니 그럼 오늘 함께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퇴근을 하고 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희형과 함께 살고 있다지만 나 혼자 살 때와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그냥 평소에 장을 보는 것에서 조금 넉넉하게 산다고 생각을 하고 물건들을 집어 오면 희형과 함께 먹고 지내기에 별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퇴근길에 장을 봐오는 걸로 충분했을 텐데 이번 주는 내가 너무 정신이 없었다. 희형의 원고를 교정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기도 했고, 소리를 만나는 일도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비었단 것조차 모를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합정역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가는 길에 간단히 요기로도 할 요량으로 뜨거운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마트를 향하는 길엔 살며시 바람이 불었고 덕분에 가뿐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마트에 도착하자 희형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달라고 했다. 카트를 가져오겠다며. 나는 카트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물건을 많이 사진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희형은 그래도 마트에 왔으면 당연히 카트를 끌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마트에 오 온 기분이 난다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희형에게 건넸고 희형은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웃으며 카트를 끌고 왔다.

나는 마트에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앞에서도 말했지만 대부분은 집 앞의 큰 슈퍼에서 장을 본다), 가끔 마트에 올 때마다 종종 내가 무 얼사 야할지 난감해질 때가 있다. 그건 너무 많은 물건이 눈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가로막는다.

나는 메모지에 적어놓은 사야 할 물건의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맥주, 양파, 위생 얼음, 콜라, 샐러드용 야채와 드레싱, 바나나, 파스타면, 토마토, 달걀, 식빵, 우유 등 냉장고를 채울 것들이 적혀 있었다.

“매번 그렇게 메모를 해온 물건만 사는 거야?” 희형이 메모를 살피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응?” 나는 메모지를 보고 있던 눈을 희형에게 돌리며 대답했다.

“메모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잖아. 마치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하고 그녀는 내가 귀엽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희형의 말을 듣고 보니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모두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넓은 마트 한가운데서 경직된 자세로 작은 메모지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 비해서 희형은 무척이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뒤로 묶은 머리가 가볍게 흘려 내려서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커다란 까만색 색 면 티에 베이지색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편해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느다란 두 손으론 카드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시선엔 여유가 있었다. 눈 앞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적당히 살펴보며 마음속으로 그것들을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마치 마트의 관라지 차럼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 천천히 둘러보자고. 필요한 게 보이면 집어서 카트에 집어넣으면 되고, 집어넣었다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다시 빼면 되니까.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안 그래?”

“뭐. 그렇지. 이렇게 밝은 곳에서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없고 말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팔짱을 끼며 나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녔다.

“그런데 참. 배가 고프진 않아?”

희형은 시식코너 앞에서 멈춰 서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전혀. 혹시나 당신이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우리는 마트에 오는 길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었어. 당신은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한잔과 햄 치즈 샌드위치를 정확히 두 조각.”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난 마트의 시식코너 앞을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배가 고파지는 걸.” 그녀는 정말로 배가 고프다는 듯 한 손을 배 위에 올리며 말했다.

“뭐 당신 좋을 대로 해. 공짜니까. 하지만 난 먹지 않을 거야. 왜냐면 난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그녀는 만두와 소시지를 두어 개 집어 먹고는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도 하나 건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희형이 건넨 만두를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식코너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맛이 있다. 다만 그 상품을 사서 집에서 먹어보면 그 맛이 안 나지만 말이다. 정말 왜 그런지 도무지 모르겠다. 분명 같은 상품인데 말이다.

“나는 마트에 오면 기분이 좋아져. 그래서 파리에 있을 때도 종종 스트레스를 받거나 기분이 우울해지면 마트를 가곤 했었어.” 희형은 신난 아이처럼 말했다.

“마트에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응. 당신은?”

“난 뭐랄까. 마트에 오면 좀 난감해.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너무 많이 있거든. 게다가 그것들은 제발 좀 사주세요, 나를 집어 가세요, 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간절한 눈빛을 거절하기란 쉽지가 않다고. 어떤 날은 필요도 없는 물건들은 잔뜩 집어 오기도 해. 그래서 그렇지 않기 위해서 아까도 사야 할 물건의 목록이 적혀있는 메모지를 열심히 보고 있었던 거야.”

“그건 당신이 모질지 못해서 그래. 꽤 착한 사람이라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집어오는 거야.”

“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당신은 마트에 오면 왜 기분이 좋아져?”

“나는 마트에 오면 뭔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야.”

희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마트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한번 휘 둘러보았다.

“마트엔 물건들만 질서를 가지고 있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줄을 맞춰서 놓여있지. 만약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놓여있다면 사람들은 이 넓은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 거야. 마치 초등학교 봄소풍의 보물 찾기처럼 말이야. 안 그래?”

“그렇겠지. 물건이 제자리에 진열돼있지 않은 마트 따윈 난 오지 않을 거야.”

“맞아. 그래서 마트의 물건들은 손님들을 위해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어야 해. 물론 물건들이 진열되는데도 많은 법칙들이 있지만 뭐 그건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진 않아. 물건들은 정확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라는 게 중요하지.” 희형은 마치 수년 동안 마트에 대해서 연구하고 학계에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런 질서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반대로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질서가 없어.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지도 않고 걷던, 뛰던 다른 사람들을 방해만 하지 않는 다면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취향으로 얼마든지 물건을 살 수 있잖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러니까 당신이 마음대로 움직이며 자신만의 속도로 물건을 살 수 있어서 자유롭다는 거지?”

“대충 그런 기분이야.” 희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그럼 당신은 마트에 오지 않을 때는 자유롭지 않다는 거야?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당신은 가장 자유로운 사람인데.”

희형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는 시식코너에 들러서 요구르트 한 잔을 마셨다. “그러니까 나는 약간은 구체적인 삶의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삶의 틀? 당신과는 잘 안 어울리는데? 뭔가 틀에 갇힌 사람은 당신보다 오히려 내쪽일 거야.”

“음... 좀 어렵긴 한데 나에게 틀이라는 건 일종의 예절 같은 거야.”

희형은 약간은 어렵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예절이 당신의 삶의 틀이다라. 어쩐지 어렵군.”

나 역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예절을 가르치셨거든.”

희형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시작했다. 희형은 자신의 세 명의 엄마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분명 엄마가 세 명이란 것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테고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참 많을 법도 한데) 종종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곤 했었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예절을 가르친다는 게 좀 웃길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꽤나 진지하셨지. 가령 이런 식이 었어. 식사를 할 때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여러 종류의 스푼과 포크의 사용 용도를 정확하게 구분 지어 설명하셨어. 그리고 내가 그 용도를 무시하고 사용할 경우엔 얼굴을 찡그리시며 “애야. 샐러드를 먹을 땐 그 포크를 사용해선 안된다. 오른쪽에 있는 걸 사용하렴.”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지."

"여러 개의 포크를 용도에 맞게 구분하고 기억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겠네."

나는 잠시나마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한국엔 구분해야 할 여러 종류의 포그가 식타에 놓여있진 않으니까. 숟가락과 젓가락은 생긴 것부터가 다르니 헷갈리지가 않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국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맞아. 그럴 때마다 나는 좀 답답했던 것 같아. 귀찮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며 밥을 먹기엔 식사 시간이 되면 난 항상 배가 고팠었고 뭐가 되었든지 얼른 입으로 집어넣고 싶었으니까. 포크로 먹든, 스푼으로 먹든, 아니면 손으로 집어먹든 아무 상관도 없는 나에게 포크조차도 구분 지어 사용해야 하는 식사예절이란 여간 쉽지가 않았으니까. 또 사람을 만날 때도 여러 가지 규칙이 있었어. 어른들이 이야기할 때는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마라. 물어보는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질문은 하지 말아라. 어른이 용돈을 주실 때는 처음부터 받지 말고 두 번은 거절을 해라. 뭐 이런 것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일종의 예절을 배우게 되니까 언제부턴가 그게 몸에 익더라고.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내가 자연스럽게 밥을 먹거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흐뭇하게 웃으셨지. 그래서 그런지 난 당신이 좋아. 당신도 항상 스푼과 포크, 젓가락을 구분해서 사용하거든. 거기다가 상당히 예의 바르기까지 하고 말이야.”

희형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갑자기 나에게로 이야기의 화제가 넘어오자 난 잠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렇다고?”

분명 나에 관한 이야기 었지만 난 그것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희형에게 되물었다. 내가 정말 그것들을 구분해서 사용했던가?

“응. 당신은 숟가락으로는 밥만 먹고 젓가락으로는 반찬만 먹어. 샐러드는 항상 포크를 사용하고, 맥주는 맥주잔에, 커피는 커피잔에, 위스키는 위스키 잔에 마시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사용하는 그릇이나 컵, 숟가락, 젓가락, 포크를 당신은 절대 사용하지 않아. 가끔은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구분해.”

“생각해보니까 당신 말이 맞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정말 그랬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나 도구들을 구분 지어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물건은 각자에 맞는 용도가 있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을 무시하며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건 아무래도 신경에 거슬렸었다. 그것은 그 물건을 만든 사람에게도 또 더욱 본질적으론 그 물건 자체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이다. 물건도 분명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이 있을 테니 우린 그 목적에 맞게 물건을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당신이랑 물건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건 당신이 싫다거나 함께 사용하는 게 불편해서라거나 뭐 그런 건 절대 아니야. 그냥 습관 같은 거야. 좀 더 예쁘게 포장하면 배려라고도 할 수 있고. 사실 당신이 말하기 전엔 난 내가 그렇게 물건 등을 정확하게 구분 지어 적합한 용도에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몰랐어. 그런 게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응. 괜찮아. 당신이 물건들을 사용하는 습관을 보면 마음이 좀 편해져. 이 사람은 작은 물건 하나에도 마음을 쓰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나에게도 가지고 있으니까. 물론 그걸 자주자주 말로 표현하면 더 좋겠지만." 희형은 날 다 이해한다는 듯 따듯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 줘서 고마워."

"아무튼 당신의 배려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야. 무관심이라던가 나와 경계를 만든다던가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아.” 희형은 나를 따듯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난 배려를 잘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확실한 영역을 구분 짓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경계는 정말이지 작은 차이이기 때문에 가끔은 혼동되고 때로는 오해도 받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나의 이런 영역을 구분 짓는 행위가 배려로 다가갔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희형은 나의 밝의 빛을 찾아내 칭찬해주는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은 잘 돼가?”

희형이 다시 한번 화제를 바꿔 물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녀는 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나간다. 처음 희형이 우리 집에 지낼 때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두 명 몫의 말을 하면 돼.” 희형은 이 약속을 잘 지켜나가고 있었다.

“응. 절반 정도는 마무리된 것 같아. 그런데 당신을 좀 더 알아갈수록 일이 쉬워지는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더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어. 정말 이상한 일이지.”

“당신과 함께 지내고 있는 나와 글 속의 내가 다른 사람 같아?”

“조금은 그래.”

“그럼 뭐가 정답이라고 생각해? 어느 부분이 진짜 나 같아?”

“글쎄…”

“말해봐.” 내가 조금 망설이자 희형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재차 물었다.

“둘 다 정답이겠지? 다만 내가 좀 더 알고 있는 부분이라면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이고, 내가 좀 더 알아가야 할 부분이라면 책 속의 당신이겠지. 난 여전히 파리에서의 당신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이 잘 가지 않으니까.”

“궁금해? 내가 파리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녀는 나에게 질문하는 게 재밌다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갔고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이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나조차도 나의 변화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미했지만 이젠 가끔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나는 진지한 의미로 확실히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변화가 싫다거나 나쁘지 않았으므로 나는 조용히 관망하는 중이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변해갈 수 있을지. 희형이 내 삶에 어느 정도까지 박힐 수 있을지.

“아니 괜찮아. 세상엔 그것 말고도 충분히 짐작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걸. 지금 당신이 내 옆에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내가 없던 시절의 당신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어.”

“하지만 나는 내가 없던 시절의 당신이 궁금해”

“당신이 없었을 때 나의 모습… 비슷해. 지금과 별로 차이가 없어. 일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종종 노래를 듣고. 그래도 당신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을 선택하라면 그래도 당신을 만나고 난 이후가 더 좋은 것 같아. 맥주 맛이 더 좋거든.” 내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고작 맥주 맛이 좋아진 게 전부야?” 희형도 웃으며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 이상. 아직은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 그 이상.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마 당신이 내 옆에서 사라지면 그때 정확히 알 수 있겠지…’ 나는 내 마음속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다만 희형의 손을 단단하게 잡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장을 봤다.

계산대 앞에 장을 본 물건을 올려놓고 보니 내가 메모지에 적어가지고 왔던 물건들과 동일한 상품들이 놓여 있었다.

희형의 말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보면 저절로 되는 것이었다. 내가 부러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건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말이다. 적어도 마트에서 장을 보는 건 식탁 위에서 여러 종류의 포크를 구분해야 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니 말이다.

계산이 끝난 물건들을 박스에 담에 포장 한 뒤 우리는 마트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벚꽃이 여기저기 피었고,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할 말이 없다. 묵묵히 봄을 흘려보내게 되면 그 결론은 분명히 날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말이다.

근거는 없지만 나에겐 그런 확신이 있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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