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소리에게 문자가 왔다. 저녁에 함께 밥을 먹자고.

[저녁에 같이 밥 먹어요]

이게 전부였다. 이유 따위도 설명하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의 연락에 적잖이 당황했다.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 남자가 이제는 영영 멀리 떠나자고 말해서 나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이나 생각들을 뒤로하고서라도 무엇보다 나는 소리의 연락이 반가웠다. 소리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볍게 기분이 좋아졌고, 어디에서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며 종종 가는 몇 군데의 음식점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기도 했다.

소리와 약속을 하고 만나는 일도 드물었지만 무엇보다 소리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들 가운데 소리가 내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는 점점 내 안에서 커지고 있었다.

그건 다른 여자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어쩌면 희형에게서 조차 말이다.


사실 나는 요 며칠 동안 상당히 정신이 없었다. 희형의 원고는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병행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한 일이 나를 좀 힘들게 했다. 사실 지금까지 일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힘들다는 느낌을 준 적은 없었는데 요즘은 좀 이상하다. 남의 글을 다듬는 것이 조금씩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작가의 원고를 조금씩 수정을 하고, 단어를 바꿔가며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나에게 적당하고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만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글을 쓰는 거지? 나라면 이렇게 쓸 텐데…’라는 생각을 해버리는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나도 창작이란 걸 하고 싶어 진 것이다. 이건 아주 작은 변화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런 작은 변화가 큰 세계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세계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조짐이 이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에 침묵하며 잠자코 살아왔던 내가, 가람이를 통해 세상에 처음 손을 내밀었던 경험이 가람이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 버린 이후 그 어떤 것도 하려 하지 않았던 내가, 그렇게 지켜왔던 나의 세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건 희형 때문 일 수도 있고, 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변화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누구 때문이건 지금 나는 그 변화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게 중요한 점이다.


합정역 5번 출구 앞에서 소리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소리가 도착했다. 나는 10분쯤 전에 도착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이곳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요즘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도무지 쉽지가 않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모두들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나도 슬그머니 담뱃갑을 꺼내게 된다. 대담해지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은 옳다, 라는 괴팍한 논리에 갇혀 사는 것 같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꽁초를 땅에 비벼 끄고 있는데 멀리서 소리가 다가왔다.

“아저씨 많이 지쳐 보여요.” 소리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요새 일이 좀 바빴거든. 그런데 뭐 괜찮아.” 뭐라 길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난감해서 그냥 간단하게 대답했다.

“오늘 내가 괜히 불러낸 거 아니에요? 피곤하면 그냥 집에 들어가서 쉬어도 돼요.” 소리가 날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나는 그냥 웃었다. 소리는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검은 가방을 뒤적이더니 지렁이 젤리를 꺼냈다. 봉지를 뜯고는 나에게 한 움큼 건넸다.

“먹어요. 난 피곤할 때 이 지렁이 젤리를 먹어요. 먹으면 힘이 나거든요. 정말요.”

나는 내 손에 건네진 네 마리의 알록달록한 지렁이를 바라보며 한 참을 망설이다가 한 마리씩 입에 넣고 먹었다. 어렸을 적 나도 이런 젤리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젤리를 먹고 힘이 났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마워. 맛있네.”

“다행이다. 그런데 아저씨가 지렁이 젤리를 먹고 있는 모습이 왠지 웃겨요. 아저씨하고 젤리는 영 어울리지가 않아.” 소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난 누가 봐도 특징이 없는(그러니까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저씨였고, 아무래도 아저씨가 지렁이 젤리를 씹고 있는 모습은 “일반적”이진 않으니까.

“장난이에요.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지는 말라고요. 지렁이 젤리를 먹으면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더 우스워 보인 다고요.” 소리가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렁이 젤리를 먹으면서 나란히 길을 걸었다.

나는 무얼 먹어야겠다는 고민을 한 적이 많지 않았다. 항상 간단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택했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도 점심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샌드위치와 커피로 때웠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적당한 재료들을 꺼내어 만들 수 있는 적당한 음식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했다. 대부분의 열량은 아마 맥주를 마시며 충족시켰을 것이다. 그러니까 의식주에서 식은 내가 가장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허기만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음식을 건넨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지렁이 젤리를 씹으며 오늘 저녁은 조금 신경 써서 소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하철 합정역에서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대로에 있는 일식집으로 갔다. 내가 가끔씩 가는 곳이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지만 음식 맛도 괜찮았고 조용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음식에 곁들일 수 있는 산토리 생맥주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역시나 맥주를 안 마실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요리사는 일본에서 요리를 배워온 듯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손님이 들어오면 ‘이락사 이마 셈’ 따위의 약간 오버스러운 일본어를 뱉어내는 그런 가게는 아니었다. 그냥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소리는 다리에 딱 붙는 스키니 청바지에 커다락 박스티를 입었다. 요즘 들어 날이 꽤나 더웠고, 그래서 소리의 옷은 더 가벼웠다. 소리가 음식을 먹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일 때마다 소리의 하얀 속옷과 그 안의 가슴이 살짝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무척이나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이 성적인 매력보다는 “젊음”이라고 생각했다. 소리는 무척이나 젊었다. 비단 나이뿐만이 아니다. 나이로 치자만 젊은 사람은 무척이니 많겠지만 소리에게는 분명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소리는 요즘 자신이 쓰고 있는 노래에 관해서 말을 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나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사로 써요. 가령 정치인들은 다들 쓰레기 라던지, 당신이 이 돈 가지고 살아봐 라던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라던지, 집 앞 카페의 커피가 너무 맛이 없어요 라던지. 뭐 그런 것들.”

“그런 게 노래가 될 수 있단 말이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물었다. 소리가 말한 이야기들은 노래가 될 수 있나 라는 강력한 의문을 들었고, 사실 나는 지금껏 그런 노래들은 들어 본 적도 없었으니까.

“물론이죠. 내가 노래를 만드는데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하는 건 영 내 취향이 아니에요.” 소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캬. 시원하네요. 그런데 아저씨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없어. 딱히 바라는 게 없으니까.”

대답을 하고는 나는 소리에게 연어 초밥을 내가 먹어도 되겠냐고 물으며 하나 남은 연어초밥을 입에 넣었다. 고추냉이 맛이 강했지만 난 이 맛이 좋았다.

“세상에 바라는 게 없다고요? 정말요?”

“응. 바라는 게 없어. 나는 무언가 바라지 않아도 적당히 잘 살고 있으니까. 바라는 걸 얻기 위해 노력하면 종종 다른 뭔가를 놓치게 돼. 원래 내 것이었던 것들 말이야. 그러니까 어차피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만나게 될 사람은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만나게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지. 내가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야. 반대로 안 될 일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거고.” 나는 절반쯤 남아 있던 맥주를 한 입에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 같은 사람은 아무 노래도 못 만드는 거지. 바라는 게 없으니까.”

“시시해.” 소리가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난 맥주잔을 손에 들고 소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바라는 게 없다고 해서 꼭 시시한 삶은 아니야.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방법?” 소리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홀을 서빙하던 여자 종업원이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맥주잔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상당히 시원해 보였다.

“관찰자가 되는 거지. 내가 뜨거울 필요는 없어. 그냥 경기장 밖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거야. 적당히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를 관찰하면 돼. 응원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욕을 한바탕 하면서. 그러면 내가 실패할 일도, 세상에 거부당할 일도 없어지거든.”

“관찰자라…” 소리는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맥주잔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가만히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잘 사는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한 번쯤은 경기장 안을 직접 들어가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어봐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도 자기 인생인데.”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간다라…” 나는 소리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면 달라질까? 예전에 친구가 한 명 있었어. 나는 관중석에 있었고 그 친구는 그라운드 안에서 뛰어다녔었지. 정말 열정적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나와는 정 반대편에 서 있었던 친구였어. 처음엔 그 친구가 뛰는 모습을 관찰하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친구와 “함께” 뛰고 싶은 마음이 든 거야. 나도 저 친구 옆에 서서 저 친구가 밝고 있는 땅을 함께 밟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다고. 멀리서 지켜만 보려니까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벽이 느껴지뎌라고. 관중석에만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었으니까. 그런 기분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가슴이 두근거렸었어.”

나는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가람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꺼낸 건 처음이었다. 물론 가람이의 이름을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내 안에 있던 가람이가 입 밖으로 나온 것이었고 그건 나에게 있어서 분명 특별한 일이었다.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소리가 궁금하다는 듯 내 말을 재촉했다. 그리고 급하게 손을 들어 맥주를 한 잔 시켰다. 목이 타는 모양이었다.

“간단해. 내가 그라운드로 뛰어들어가 친구의 옆에서 한동안 함께 있었지.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관중석으로 올라가버렸어. 친구는 자살을 했거든. 나는 그라운드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지. 그러운데 안에서 나는 사람에 체이기도 하고 때론 넘어지기도 했어. 나는 숱한 상처를 껴안고 힘겹게 다시 관중석으로 기어 올라갔어. 다시는 내려오지 말아야지 결심을 하고는.”

소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소리의 손을 바라봤다. 소리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니 손가락이 거칠어 보였다. 아마 기타를 많이 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가 자살을 했어요? 무엇 때문에?”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어쩌면 친구는 관중석을 동경했는지도 몰라. 아니면 나를 그라운드로 내려오게 만드는 게 그 친구의 목적이었는지도. 목적을 이루었으니까 이제 자기 일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다시…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요? 시간이 꽤 많이 흘렀잖아요.” 소리가 조심히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하얀 거품이 조심스레 일렁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사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요즘 변해가고 있었다. 다시금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자의건 타의건. 내 세상이 자꾸만 좁아지고 있었고 더 이상은 관중석에서만 버틸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스스로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이유일 수도 있는 소리에게 직접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음… 설명하기 좀 어렵긴 한데. 분명 난 조금씩은 변해가고 있어. 이건 일종의 느낌이야. 그런데 내가 아직 그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언어로 풀어 설명해 내기가 어려워. 미안해.”

“응. 알겠어요. 기다릴게. 난 아저씨가 다시 세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고마워.”

나는 남은 맥주를 비워냈다.


그날 나는 결국 소리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왜 함께 밥을 먹자고 했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소리에게 했고 소리는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세상으로 날 불러내려 했다. 예전에 가람이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