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파란 청춘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12시 40분. 점심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끼리끼리 밥을 먹으러 나갔다. 나는 사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아무도 나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함께 밥을 먹자고 말해도 내가 거절했겠지만.

그게 싫다는 건 아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난 차라리 혼자 밥을 먹는 게 더 좋다. 서로 의미 없는 말을 내뱉으며 메뉴판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와 속도를 맞춰가며 밥을 먹는 것도 싫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입이 다소 짧은 편이었다. 그래서 자주 밥을 남겼다. 밥이 입에 맞지 않아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조차 나는 종종 밥을 남겼다. 밥을 남김없이 싹싹 먹는 건 도무지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건 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저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그래서 밥그릇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부끄러웠졌다. 혼자 얼굴이 벌게져서는 도무지 먹은 밥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가 없었다. 이건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손에 꼽는 몇 번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는 혼자 밥을 먹었다. 그래서 내가 밥을 남기건 말건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고 난 뒤부터 몇 번인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때 말이다. 내가 밥을 남기면 상대는 종종 나에게 귀찮고 난처한 질문들을 해댔다. 밥 맛이 없냐는 둥, 메뉴가 이상했냐는 둥, 몸이 좋지 않냐는 둥. 나는 그것들에 일일이 변명을 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그런 질문 때문에 소화도 더 안 되는 듯해서 나는 그저 속이 좀 좋지 않다, 라는 변명을 했다. 그리고 나중엔 그것 조차 귀찮아져서 혼자 밥을 먹었다.


나는 출근길에 사가지고 온 샌드위치를 꺼냈다. 그리고 커피를 한 잔 내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좀 크게 틀었다. 커피 향과 유재하의 음악이 사무실에 흘러넘쳤다.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이런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편집장이었다.

“유재하를 좋아하나 봐? 나도 참 즐겨 들었었는데.” 그은 내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점심시간에 이렇게 일찍 돌아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역시나 드문 일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급하게 노랫소리를 줄였다.

“괜찮아. 그대로 두라고. 듣기 좋은데 뭘. 그런데 매일 혼자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는 거야?”

“네. 딱히 불편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나가서 사 먹는 건 귀찮기도 하고요.”

“참 독특한 사람이야. 사람들과도 좀 어울려 보라고. 다들 괜찮은 사람들인데.”

“알아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는 거. 그런데 역시나 전 이게 편합니다. 식사 안 하셨으면 샌드위치 하나 드시겠어요?” 나는 남은 샌드위치 한 조각을 건넸다.

“괜찮아. 오늘은 딱히 허기가 지지 않네. 커피나 한 잔 주지 그래.”

나는 커피를 한 잔 더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조용히 유재하 노래를 흥얼거렸다.

곁눈질로 살짝 바라보니 상당히 지쳐 보였다.

편집장은 항상 당당한 분이셨다. 우리 출판사의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업계에서 입지가 단단한 이유는 상당 부분 편집장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돈을 좇아서 책을 내는 그런 출판사는 아니었다. 무언가 철학이 있었고, 그것이 설령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분이셨다.

"여기요. 좀 뜨겁네요." 나는 그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고맙네.”

그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계속해서 눈을 감고 계셨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실 듯한 분위기여서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유재하 노래가 끝이 나자 그는 입을 열었다.

“자넨 청춘이 뭐라고 생각해?”

“글쎄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나는 이제 나이가 50을 넘겼는데 그래도 내가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으셨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내 청춘이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생각이 든다, 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매우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어. 내 청춘은 이제 끝이 났다고.”

“청춘이 나이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요?” 나는 다음 노래를 뭘 들어야 할지 노트북의 플레이 리스트를 살펴보며 물었다.

“그렇지. 나이의 문제는 아니야. 맞아. 나이 문제는 아니지.” 그는 나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청춘은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청춘은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물론 이제는 저도 청춘이라고 하긴 좀 뭐하긴 하지만요. 다시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라고 말한다면 전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가 다소 건방지지 않았나 걱정이 된 것이다.

“자네 청춘이 왜 힘든 줄 알아?”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정해진 게 없기 때문 아닐까요?”

“청춘이 힘든 건 그 시절이 좋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반대로 늙는다는 게 힘든 건 늙어보기도 전에 그게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세상에서 청춘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지만 늙는 게 힘들다는 건 여기저기서 누구나 떠들어 대거든.”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전 청춘의 시절이 좋지는 않았는걸요.”

“그래서 자네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거야. 커피 잘 마셨네.”

편집장은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더니 자리에 돌아가 앉으셨다.


누구에게나 청춘이나 늙음 따위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처절하게 힘든 청춘도 있을 것이고, 에너지 넘치는 늙음도 있을 것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삶의 굴곡은 시기를 재가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맑은 날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처럼. 그러니 우리는 아무 대처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누구에게는 파란 청춘이 누구에게는 벼랑 끝에 힘겹게 핀 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난 청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커피 향은 여전히 사무실에 가득했고 사장님은 창 밖을 바라봤다. 나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커피를 마셨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