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단편 하나.
니코스 카잔챠키스의 “그리스인 조루바”를 읽었다.
고등학생 때였고, 그 책은 문학부의 독서토론 과제였다. 그러니까 그 책은 의무적으로 읽어야만 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열심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어차피 과제였고, 책을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적당히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읽지 않은 책을 충분히 읽은 척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 시절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 었고(그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책의 흐름만 대충 파악을 한다면 다른 책의 이야기를 이 책의 이야기인양 둘러대는 것이 가능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스인 조루 바”를 열심히 읽었다. 첫 페이지의 첫 글자부터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글자까지. 최선을 다해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몸 안의 모든 힘이 빠져나가느듯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자는 것 까지도.
그런데 이상한 것이 책을 읽고 나니 책의 작가도, 주인공인 조루바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리스”라는 나라만 선명했다. 한 번 몸에 흡수되면 절대 빠져나가지 않는 중금속처럼 “그리스”라는 나라가 내 몸안에 침전되어 단단하게 굳어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역시나 왜 그랬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뭐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리스는 어떤 곳일까?’라는 생각만 며칠이고 했었다. 문학부의 모임에 가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스는 어떤 곳일까’
어렴풋이 무척 덥겠다,라고 짐작만 했다.
단편 둘.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니 개가 거실에 개가 한 마리 있었다.
골든 레트리버였다. 아직은 새끼였는지 몸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신음소리를 내며 의자 뒤로 몸을 숨겼다. 나를 무서워했던 것 같다. 어쨌든 집 안에는 내 채취가 있었을 테고, 개는 후각이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이 내 공간에 “침범”하고 있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테지.
계속해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뒷걸음질 치더니 의자 다리에 오줌을 갈겼다. 자신도 더 이상 물러설 고이 없다는 처절한 영역표시였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무서웠던지 얕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개의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아버지가 나오셨다. 개가 갈겨댄 오줌을 화장지로 닦으시며 아는 사람에게 얻어온 것이니 한 번 잘 키워보라고 하셨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산책을 시켜주란 말도 하셨다. 아, 그리고 아직 이름이 없으니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란 말도.
나는 “리치”라고 이름을 붙였다.
리치는 3개월쯤 지나자 정말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졌고, 산책을 나가면 내가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여름날, 나는 리치를 데리고 산책을 갔었다.
리치는 집 앞 전봇대에 엄청난 오줌을 갈기고는 멀리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리치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나에게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동안은 집 안에서 리치의 냄새가 났고, 얼마 지나지 안이 집에서 리치의 냄새는 사라졌다.
그 뒤로 한 번 리치와 길 위에서 마주쳤다. 녀석은 더욱 덩치가 커졌었고, 더 이상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도 네 마리나 있었다. 새끼들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다가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단편 셋.
편의점엘 자주 간다. 정말 자주.
가끔은 딱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편의점엘 가곤 했으니 정말 자주 갔던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한 조명과 편의점만의 독특한 냄새가 좋았다.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듯이 놓여있는 물건들과 정확하게 적혀있는 가격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나 편의점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카드를 건네면 된다. 계산이 끝나면 카드를 돌려받고 물건을 집어 든 뒤 나오면 된다. 종업원도 나도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종업원과 나는 서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관계보다는 인식이 더욱 익숙한 곳이 편의접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것에는 딱히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다.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서는 그리스의 재정상태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정부의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문구들이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날이 더운지 모두들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나왔다. 맥주를 마시면서 걷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시위를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즐거워 보였다. 그 장면이 마치 “그리스인 조루바”의 조루바가 리치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 같았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 두 개를 샀다.
희형이 집에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냥 두 개를 샀다. 희형은 핸드폰이 없기 때문에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집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도시락을 두 개를 집어 들고는 7000원을 계산하고 나왔다.
역시 희형은 집에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데워서 함께 먹었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 마셨고 희형은 와인을 먹었다.
그리스는 역시나 더운 곳 같았고 리치는 지금 쯤 열세 살이 되어있을 것이다.
희형과 나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단단히 묶여있었다.
인식이 아니라 관계로.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