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말을 하는 것과 듣는 것.
나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듣는 편이 더 좋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면 난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는 것과 듣는 것 모두 어느 정도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하는 행위이고, 난 에너지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과, 어쨌든 잠자기 전까지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한다면 말을 하거나 듣는 것, 이 둘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저녁 식사 후에 희형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빠지지 않는 일과가 되어버렸다. 처음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자신이 두 사람 몫의 말을 하면 된다는 약속을 희형은 성실히 꾸준하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희형의 이야기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곤 한다. 그녀는 정말이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고(새끼발가락 아래 있는 빨간 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언제나 열심히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녀는 무언가를 성취한 아이처럼 만족해했다.
희형은 이야기를 할 때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다양해진다. 저 작은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다양한 표정이 나오지?라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녀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이다. 가끔은 자신이 한 이야기에 스스로 너무 몰입한 나머지 눈믈을 흘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곤 했다. 그건 나를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그러니까 그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건 일종의 공백 같은 거였어. 갑자기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어.”
그날은 이상하게도 희형의 말이 평소보다 더욱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녀는 와인잔을 들어 입술에 살짝 적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렇게 와인을 마신다면 한 잔을 두고도 밤 새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하나, 둘, 셋 을 센 뒤 동시에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사라져 버리는. 서로 짠 듯이 동시에.”
그녀는 그때가 다시 생각난다는 듯 눈을 감고는 두 손을 얼굴에 가져가 볼을 감쌌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은 채. 나는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언제나처럼 말을 하는 건 그녀의 몫이었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됐다.
시간이 3분쯤 흘렀을까, 그녀가 볼을 감쌌던 손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럴 때면 나는 마치 한 명의 관객이 된 듯 한 기분이 되곤 한다. 연극에 몰입한 한 명의 관객이 되어 주인공인 그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난 결국 그 공간에 혼자 남겨지는 거지. 덩그러니 혼자 말이야.”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녀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한 번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해봐. 창 밖으론 조용한 마을들도 스쳐 지나가고 푸른 초원도 펼쳐져 있지. 기차에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철도직원들이 좁은 통로를 오가며 커피나 오징어 따위를 팔고 있어. 그런데 기차가 긴 터널을 지나는 거야. 왜 그럴 때면 사람들은 갑자기 말이 없어지잖아. 방금 전 까지만 해도 함께 과자를 먹거나 귤을 까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가도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면 갑자기 침묵하는 것 말이야. 주변이 순식간에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리는 거지. 그럴 때면 모두가 본능적으로 침묵하게 돼. 그리고 기차가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가기만 기다리는 거야. 터널만 빠져나가면 다시 귤을 까먹으면서 웃고 이야기하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긴 터널이 끝이 나고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해. 그럼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봐. 그런데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 거야. 단 한 명도. 그럼 난 홀로 남겨진 채 덩그러니 놓여있게 되고 기차는 꾸준하게 날 어디론가 데려가버려.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면서 말이야.”
나는 눈을 감고 잠시 그 장면을 상상해봤다. 기차가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사라져 버리는 상황. 그녀가 공백이라고 말했던 상황. 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여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나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녀의 공백의 이야기 한가운데 우리가 내뿜은 담배연기가 가득해졌다.
“언제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녀에게 물었다.
“고등학생 때”
“고등학생 때? 파리에서 학교를 다녔었지?”
“응.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어.”
그녀는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는 듯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어.” 하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웠고 나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니까 그때쯤의 나는 뭐라 말할 수없을 정도로 불안정했어. 내 것이라곤 하나도 스스로 품지 못한 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휩쓸려 다녔었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그리고 무슨 호기였는지 기말고사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한 거야. 그냥 그땐 선생님들도 싫었고 학교도 짜증 났었거든. 친구들과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른 나도 싫었고. 그래서 백지로 제출한 거지. 아마 시험지에 욕도 몇 마디 적었던 것 같아.”
“시험지에 욕을 적어서 냈다고?”
“응. 상상이 잘 안되지?”
희형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살짝 웃었다. 지금의 그녀의 이미지에서는 다소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나는 조금 놀랐다.
“여름 전까지만 해도 성실하게 학교를 잘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이니 선생님은 아빠를 불러서 상담을 하셨지. 그날 저녁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채 저녁 식사를 준비하셨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어. 식사를 다 마치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무거운 입술을 떼시더니 한마디 하셨어. 내가 미안하다고. 잘못은 모조리 내가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당신이 미안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어.”
“다른 말씀은 안 하셨어?”
“응. 아무 말씀도.”
그녀도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뭐가 미안하셨을까?”
“글쎄. 어쩌면 책임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우리 집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 난 엄마가 세 명 있었다고.”
“엄마가 세명인 것과 당신이 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한 게 무슨 상관이지?”
“말했잖아. 엄마가 세명인 게 정상은 아니라고. 아빠는 그런 부분에서 책임감이나 죄책감이 있으셨나 봐.”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그날 밤 나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어. 본능적으로 느꼈던 거야. 이제 내 인생에서 아빠가 사라지고 있다고.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놓쳐버린 듯한 기분이었어. 전부를 놓쳐버렸으니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당신에겐 아버지가 전부였군.”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두 분 모두 나의 전부였던 적이 없었으므로 난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그래서 아빠를 더욱 붙들게 되고. 어쨌든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별다를 건 없었어. 다시 예전처럼 난 성실한 학생으로 돌아갔고 아빠와도 잘 지냈지. 그런데 사라져 버린 아빠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결국 아빠와 나의 세계가 분리돼버린 거야. 서로를 이어주던 다리가 붕괴된 거지.”
“그건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아버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않아. 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 아빠는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않다고. 그리고 아빠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계신다고.”
그녀는 말을 마친 후 다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는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집 밖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 앞 골목을 어슬렁 거리는 크림색 고양이가 분명했다. 저 고양이 덕분에 항상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을 때 조심스러웠다.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면 고양이가 전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그리고 골목에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음식물 쓰레기는 그 누구도 치우지 않았다.
“그렇게 전부를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에 나는 한동한 공허한 마음을 앓았었어.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전부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말 그대로 전부를 잃어버린 건 아니라고.”
그녀는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엔 여려 개의 공간이 있는 거야. 난 그중 작은 공간 하나를 잃어버린 것뿐이었지.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었었고. 그런데 다른 공간들이 마치 감자 뿌리처럼 내 마음속엔 많았어. 그래서 잃어버린 작은 공간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어차피 부모와 자식은 분리되어야 하는 거니까. 안 그래?”
“마음속 공간은 여러 개라...”
나는 그녀의 말을 천천히 내뱉어 보었다.
“그런데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그냥. 당신도 당신 마음속 여러 공간들을 찾았으면 해서. 당신이 잃어버린 게 무엇이든 그게 당신의 전부는 아닐 거야.”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마음엔 여러 개의 공간이 있고 그것들을 잃기도 하고 빈 공간을 다시 채우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도 공간이 여려 개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피우고 있던 담배에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괜찮은 느낌이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