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나빴네.

가족 여행은 어째서 싸움으로 끝나는가.

by 꼬메뜨

"김치 가지고 가도 되겠지?"

엄마에게서 가을에 해 놓은 김장김치와 알타리 김치는 새로 해서 가지고 오겠다고 카톡이 왔다.


"안 터지게 잘 싸오면 되지. 기대되네, 오랜만에 엄마 김치."


엄마는 내가 일본에 사는 덕분에 벌써 여러번 도쿄를 왔다갔다했다. 반면 동생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 타는 비행기라며 출국을 앞두고도 계속 불평을 했다. 웹체크인이 어렵다느니, 좌석 지정이 안 된다느니. 예약은 석 달 전에 해놓고 그 뒤로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우리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나였다면 예약 후에 뭔가 더 준비 할게 없는지 한번 더, 두번세번 확인했을텐데.


여러 이유가 겹쳐 친정 식구들이 한 번에 도쿄에 오게 됐다. 내년이면 우리 첫째 아들이 이제 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방학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으니까, 동생은 한번도 안와봤으니까, 시댁 식구들은 다같이 여러번 놀러왔었으니까, 우리도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으니까 등등 이유를 갖다 붙여댔다. 엄마, 동생 부부, 다섯 살 조카. 그리고 우리 가족까지 여덟 명. 생각만 해도 머리가 바빠지는 숫자였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하코네를 가고 싶어 했다. 예전에 화산 활동 때문에 포기했던 곳. 이번에는 꼭 모시고 가고 싶었다.


엄마와 동생의 일본 여행이 결정된 이후로 바로 이것저것 예약에 들어갔다. 일본식 의복인 유카타가 준비되어 있고, 일본식 다다미 방에, 석식은 가이세키 요리가 나오고, 야외 온천인 로텐부로(露天風呂)가 있는 곳,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역에서 가까운 곳, 체크아웃 후에 놀러갈 때도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숙박지 선택에 진심을 다했다. 교통편도 미리 티켓팅을 해 놓고, 뭘 먹을지를 정해놓고, 몇시에 집에서 나가고, 남는 시간에는 뭘 해야할지 등 계획을 차곡차곡 세워나갔다. 이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처음’이고, 누군가에게는 ‘기대’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월 말이 되어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피곤했다. 긴 입국 대기, 새벽부터 이어진 이동. 한국에서부터 긴 시간 여행이 이어지고 있는 엄마와 동생네 가족은 만나자마자 모두 지쳐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첫날은 저녁밥만 다같이 먹고 잠들었다. 엄마가 가져온 김치는 그날 맛도 보지 못했다.


둘째날은 하코네로 가는 날. 미리 예약해 놓은 로망스카 출발 시간은 정해져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8명이 한 집에서 급하게 준비를 끝내고 택시 두대를 불러서 역으로 향했다. 예약한 열차 칸이 제일 앞이라서 짐을 끌고 앞칸까지 어찌나 뛰었던지! 저번주에도 릴레이 마라톤에 참가했던 나는 뛰는 것에 익숙하고, 도쿄에서 차 없이 생활하는 우리는 뚜벅이 가족이라서 괜찮았는데, 평소에 운동을 안하는 한국 가족들은 엄청나게 숨을 헐떡거렸다. 다들 자동차로만 이동을 해 와서 그런지 전철을 타는 것도, 이동 시에 많이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숨을 좀 가라앉히고 드디어 바깥 풍경을 보면서 8명이 오손도손 여행 시간이 되었다.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에 도착해서는 내가 짐을 미리 숙박지로 보내고, 하코네에서 이틀 동안 사용할 프리패스도 구입했다. 오와쿠다니 가기 전에 대기가 있기는 했지만, 유명한 돈카츠 집에서 점심도 먹었고, 배불리 먹고 나서는 오와쿠다니로 이동했다. 거대한 화산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모두 놀랄 줄 알았는데, 엄마는 다리가 아파서 힘들고 유황 냄새가 역겨운지 밖에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동생도 냄새가 별로 라면서 엄마와 함께 했다. 이런 거대한 자연 경관을 나가서 직접 봐야 하는데, 힘들다고 이 기회를 놓치다니. 이런 점들도 정말 엄마와 나는 너무 다르다. 언제 또 올 줄 알고.


하코네 프리패스를 이용해서 아시노코 호수에서 해적선 관광까지 끝내고 나서 다다미로 된 호텔에서 1박도 했다. 그렇게 평화롭게 하코네 여행을 잘 끝내고 이제 집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돌아가는 날,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일정이 끝났다. 하코네유모토에서 신주쿠까지 돌아가는 열차 시간은 오후 4시반인데, 2시 반에 이미 일정이 끝나버렸다. 이제는 등산열차를 타고 호텔에 가서 짐을 찾고, 하코네 유모토 역으로 돌아가서 로망스카만 타면 이 여행이 끝난다.


이틀 연속으로 분주하게 움직인 엄마와 동생네 가족은 피곤함이 얼굴에 보였고, 아직 열정이 식지 않은 아이들은 조잘조잘 서로를 자극하면서 웃고 있었다. 어른들은 다들 피곤해보이니 짐은 나 혼자만 호텔에서 픽업하기로 하고, 모두 등산열차를 탄 채로 하코네유모토역으로 가서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 혼자 역 밖으로 나와서 호텔에서 여유있게 짐을 찾고, 화장실도 좀 여유있게 들리고, 다시 등산열차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역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있으면 시간 확인하기 바쁜데 혼자 타고 있으니 수트케이스로 짐이 있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로망스카의 시간을 확인해보니 내가 예약한 4시 반의 열차 앞으로 3시 반에 열차가 있었고, 내가 하코네 유모토에 도착하고 10분 후에 출발하는 차였다. 이걸로 바꿔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자리를 확인해보니, 미리 예약한 열차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올 수 있는 자리로 미리 지정해 놨던거지만, 시간대를 바꾸면 모여서 앉아있을 수 없었다. 열차 한 칸에서 두 사람이 일열로 앉을 수는 있지만, 따로 떨어져 앉아야했다.


하코네 유모토역에서 모두의 의견을 묻고 신주쿠로 돌아가는 로망스카의 시간을 바꾸기로 했다. 급하게 바꿨고, 여유 시간이 얼마 없어서 분주히 이동해서 열차에 탑승, 그리고 출발했다. 다들 잘 놀고 잘 먹고 이제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저녁 먹으러 가면 된다. 저녁은 거의 장어를 먹는것으로 확정됐다. 이제 가게 예약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아 아이의 잠바를 벗겨주고 있을 때 였다. 남편이 갑자기 분주하게 뭘 찾는다.


"왜 그래?"


"나 가방을 두고 왔나봐."


이 남편의 한마디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잊어버린건지 기억을 더듬어 보는 그. 나 없이 등산열차를 타고 다같이 하코네유모토 역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유모차와 아이들과 같이 있었고 그 때 본인의 가방을 위에 올려놓고 안가지고 내린 것 같다고 한다. 기억을 찾았으니 바로 등산열차를 운영하는 회사의 헬프데스크에 전화를 해 보았다. 그 사이에 약 1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열차는 이미 오다와라 역을 지나 열심히 도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 온 그는 다행히 역무원이 바로 찾아서 분실물센터에 도착해 있는 가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택배로, 착불로 해서 보내달라고 해보지!"


이미 역무원이 본인 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에 직접 와서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미 달리고 있는 열차 안에서, 순간적으로 나는 내뱉었다.


"이번 역에서 내려서 찾아와."


온갖 안 좋은 감정이 다 들었지만, 현실적으로 하코네까지 언제 또 가냐는 생각에 바로 그를 내려 보냈고, 지갑까지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렸으니 혹시 몰라서 주머니에 찔러 넣어놨던 현금 만2천엔을 남편에게 쥐어주면서 바로 찾아가지고 오라고 보냈다.


안 좋은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면서 신주쿠에 도착했다. 엄마와 동생 가족은 내일 오후 비행기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집에서 오전에 출발해야 공항에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쇼핑하고 싶은 것들을 오늘 바로 사기로 했다. 남편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면서 엄마가 사고 싶어하는 목록들을 구입하고, 집에 돌아가면서 저녁을 먹을 가게를 예약하려고 할 때였다.


열차 안에서 장어구이를 먹는 것으로 어느 정도 결정이 나서 미리 찾아놓은 장어구이 집에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동생이 자기와 딸은 생선구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 고기를 먹자고 한다.


저녁을 먹기까지 앞으로 1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가게를 다시 찾아야 했다. 이럴 거면 진작에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해줬어야지! 싶었지만, 일단은 불평을 말하기 전에 배고파할 아이들을 위해서 1시간 후에 예약이 가능한 가게, 8명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찾는게 최우선이였다.


주말에, 그것도 당일 1시간 전에 8명이나 되는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가게는 한정적이였다. 가능하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예약하고 싶었지만, 모두 8명 자리는 안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으로 점차 전화를 돌려봤는데, 결국에는 신주쿠 가부키쵸 근처에 있는 가게가 예약이 되었다.


가부키쵸는 아시아 안에서도 유명한 환락가이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에 데리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택시를 또 두대를 불러서 이동을 하고, 남편도 마침 가방을 찾아서 바로 가게로 도착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꽤 고급진 메뉴를 파는 고깃집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갑작스러운 예약이였지만 우리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가격대가 좀 있어서 나중에 카드값이 걱정되었지만, 언제 또 이렇게 가족이 일본에 모여서 식사를 할까 싶어서 좋은 걸로 시켰다.


엄마는 언젠가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마셨던 일본의 매실주가 맛있었다면서, 건배 메뉴로 매실주를 주문했고, 나도 같은 메뉴로 시켰다. 모두가 주문한 마실거리가 나오고, 건배까지 했는데, 엄마가 한마디 한다.


"전에는 이런 맛이 아니였는데."


"전에는 이렇게 조금 주지 않았는데."


당연히 가게마다 준비해놓은 매실주가 다르고, 주는 양도 다른 것을 굳이 이렇게 불평을 해야하는걸까 싶었다.


"가게가 다르니까 그렇지 뭐." 하고 이때까지는 잘 넘어갔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한국과 다르게 조금씩 잘려서 나오는 고기 상태를 보고 엄마가 또 한마디를 한다.


"이렇게 해서 언제 다 먹니."


어렵게 예약하고 모두가 앉아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데, 엄마의 불만 섞인 한마디한마디가 정말 나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엄마, 이 가게로 오게 되서 마음에 안 드나본데, 오늘 갑자기 예약을 했고, 나도 이런 가게인 줄 몰랐고, 불만없이 그냥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네. 서로 다들 피곤한데."

"내가 언제 불만을 이야기 했다고 그래?!"


이 때부터 분위기가 싸하게 흘러갔다.


엄마는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험한 소리를 하려고 했다.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는 내내 차분하게 대응했고, 엄마도 눈치를 챘는지 얼굴은 씩씩 거리면서 나에게 계속 더 말을 토해내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흥분하는 엄마 모습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도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게 된 게 더 속상했다. 모두 이렇게 또 언제 놀러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다들 큰맘 먹고 온건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장어 먹겠다는 이야기는 이미 하코네를 떠날때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이야기를 하지 않은 동생부터 잘못된 건지, 잘 못 먹는다고 해도 그냥 내가 밀어붙이고 장어집을 예약을 미리 해놨어야 했던건지, 지친 내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던건지. 여러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굳이 여기서 저렇게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이 제일 속상하고 보기 싫었다.


엄마는 먹다말고 본인의 성에 차지 않는지 밖으로 나가버렸다. 동생도 먹다 말고 마지막 디저트를 남겨두고 엄마에게 향했고, 결국 내가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 엄마를 태운 택시가 먼저 가고 동생과 내가 같은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동생에게 엄마가 한 말들은 나를 더 속상하게 했다. 엄마는 마지막 만찬을 거하게 사주고 싶었는데 불만을 이야기 했다는 것만으로 자식에게 한소리 들은게 속상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뿌리깊이 본인이 돈을 내면 이정도 불평을 해도 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는 말이였다.


일본에 살아가면서 어릴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이런 모습이 이제는 내가 못 견뎌한다는걸 이번에서야 알아챘다.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의 그 방식을 견디고 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넘길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엄마와 동생 가족은 다음날 오전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원래는 공항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지만, 엄마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상태에서 동생네 가족도 불편해 할 듯 하고,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모두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남편은 그저 한번 포옹해주며 언제나처럼 재택근무를 계속 했다.


엄마와 동생 가족이 간 후 집 정리를 하고, 남편과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준 김치를 꺼내 먹었다. 볶은 김치와 함께 밥을 먼저 한 숟가락 뜬 남편이 말했다.


"장모님 김치 진짜 맛있네!"

그의 말과 함께 나도 한입 먹었다. 진짜 맛있었다.


"김치가 맛있어서 더 짜증나 진짜."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빙그레 웃어서 조금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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