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딸"에서, "엄마"도 되었습니다.

첫 출산의 경험은 역시나 힘들었다.

by 꼬메뜨

35주가 되는 날, 출산을 위해 한국으로 출국했다.


한국으로 가기 전까지는... 제발, 일찍 나오지 말아 줘...라고 빌고 빌었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점점 무거워지다 보니... 이제 좀 나와줄래?...라는 생각이 한 달 내내 멈추지 않았다. 나와 예정일을 5일 차이로 둔 둘째 예정의 내 친구는, 둘째라서 그런지 몰라도 예정일보다 2주 빨리 낳았는데, 난 결국 예정일을 3일이나 넘기고 말았다. 그것도 유도분만으로. 우리 아가는 건강하고 예쁘게 태어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엄마랑 엄청 떨어지기 싫었나?


한국에도 도착했겠다, 이제는 출산해도 걱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아기가 나와주기를 바라며 인터넷으로 "빨리 출산하는 법"을 검색해봤더니, 많이 걸으면 빨리 나온다는 글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시댁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시댁 아파트 단지 주변은 모두 언덕이라서 매일 그 주변을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장 보러 갈 때나 잠시 산책하러 나갈 때면 매번 가진통인가 싶은 배 당김은 있었으나 진통이다 싶은 아픔은 없었기가 정기검진 때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보니, 열심히 운동한다고 아기가 일찍 나오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그렇게 하면 다 날짜 맞춰서 아기 낳게요?"


그러하다... 맞는 말인 듯하다.

스쾃를 해도, 계단을 오르고, 언덕 주변을 열심히 걸어도 일찍 나와주지 않더라. 출산하고 보니 나오고 싶은 아기 마음이었구나! 싶다.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정기검진 날이었는데, 태아가 무거워지고 있어 유도분만을 권유받았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로... 보통은 1주일 정도 지나서야 유도분만을 권유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왜 이리 빨리 권유받나 싶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이틀을 늦췄다.


유도분만은 힘든 자연분만이었다.

역시... 자연분만으로 아가가 나오는 날짜는 맞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도분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가는 유도분만 이틀째에 나와주었다.


유도분만을 예약하자, 병원에서 정해준 시간에 도착해서 유도분만에 필요한 준비(질정을 넣는다든지, 유도분만제를 투여한다든지)를 차곡차곡했지만, 결국엔 그 날 태어나지 못하고, 그다음 날 오후 늦게서야 간신히 나와주었다. 자연스러운 진통을 느끼고 나와주었다면 나도 아가도 조금 더 편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유도분만을 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의사의 권유대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윤소희18.JPG 태어난 다음날 병원에서 찍어준 아기 손. 쭈글쭈글하다.


IMG_4818.jpg 생후 65일쯤 찍은 우리 아기 손. 포동포동 살이 잘 올랐다.


출산할 때, 그리고 아기를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올 때 엄마도 함께했다.

지금까지 나는 엄마라고 불러보기만 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 아기가 나에게 엄마라고 불러줄 걸 생각하니 벅차오르기도 하고, 첫 딸인 나를 낳았던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왠지 모르게 다시 생각해도 찡해진다.


지금까지는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또 어딘가에서는 회사 동료로 살아왔던 나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나는 우리 아가의 엄마입니다.


열심히 살아갈게 아가야. 우리 아가한테 부끄럽지 않고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엄마가 될게. 함께 노력하며 아빠랑 같이 잘 살아가 보자.




2019년 7월 21일에 쓴 글.


과거에 메모해 놓은 것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때도 브런치 작가가 되려고 써 놓았던 것들, 퇴짜를 맞았었지만 지우지 않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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